최근 등장하는 대부분의 재즈 연주자들이 그러하듯이 피아노 연주자 로버트 글라스퍼도 재즈 외에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게다가 그는 힙합 랩퍼들과 함께 활동 하는 등 재즈를 중심으로 인접 장르 쪽에서의 활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블루 노트가 그를 홍보할 때도 늘 재즈와 R&B, 힙합 등과의 관련성이 언급되곤 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앨범들을 살펴보면 재즈 외의 인접 장르와의 관련성은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복잡 세련된 코드 구성에 기반한 화려한 연주는 그가 허비 행콕-그가 보여준 인접 장르와의 관련성과 무관하게 오로지 피아노의 측면에서-의 그늘 아래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블루 노트에서의 세 번째 앨범은 ‘드디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접 장르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 앨범과 판이하게 다른 질감의 사운드를 선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자신의 음악이 지닌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싶다. 앨범 타이틀이 이를 말한다. 이번 앨범은 마치 두 밴드의 공연을 담아 놓은 듯 서로 다른 두 세트로 구성되었다. 실제 앨범은 클럽 공연에서 밴드 멤버를 소개하는 듯한 멘트로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세트는 정통적인 피아노 트리오의 연주로 템포와 상관 없이 정교한 코드 진행과 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주가 상당히 화려하다. 그리고 한편 7번째 트랙부터는 스스로 ‘The Robert Glasper Experiment’라 명명한 색소폰, 보코더, 턴테이블 등이 가세한 일렉트릭 성향의 밴드의 연주를 담고 있다. 그리고 <Canvas>앨범에도 참여했던 빌랄과 모스 데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일렉트릭 성향의 연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밴드 연주를 트리오 연주와 관련 없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R&B, 힙합 등의 리듬에 전자적인 질감의 사운드가 어쿠스틱 트리오와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로버트 글라스퍼의 피아노(혹은 펜더 로즈) 연주는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트리오 연주의 마지막 곡 ‘Think Of One’과 밴드 연주의 첫 곡 ‘4eva’가 자연스레 이어졌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앨범은 재즈는 물론 다른 장르의 음악까지 아우르는 로버트 글라스퍼의 음악적 관심을 보여주면서도 실질적인 그의 음악적 기반은 재즈일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