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인간의 가치를 환기시키다
매일 같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서 잠시 마음에 한줄기 바람이 필요할 때 제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잠시 현실을 잊고 다른 곳을 꿈꾼다. 좋지 않았던 부분은 사라지고 이제는 아련한 향수만 남은 지난 날이나 가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자신을 놓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은 갈수록 개인적인 것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여유, 낭만을 위해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인기 곡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특정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음악들도 많다. 하물며 연주자의 개성을 우선시하는 재즈는 갈수록 다양화, 세분화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음악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음악을 만나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기란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보컬의 하나인 멜로디 가르도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의 음악을 해왔다. 2008년에 발매된 그녀의 첫 앨범 <Worrisome Heart>의 경우 2003년 겪은 커다란 교통사고로 인한 뇌 손상-기억에 관련된-을 치료하고자 시작한 뮤직 테라피의 과정에서 만든 곡들을 담아낸 것이었으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2009년도 앨범 <My One and Only Thrill>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픔의 위로에 이르는 내면적인 정서를 담아낸 것이었다. 이어 2012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The Absence>는 두 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 홀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 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음악적 경험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감상자들 또한 이들 앨범을 들으며 개인적 일상의 위로, 사랑의 아픈 추억의 치유, 여행에 대한 자극 등을 받았다.
그런데 <My One and Only Thrill>의 성공을 견인했던 명 제작자 래리 클라인과 다시 함께한 이번 네 번째 앨범은 다르다. 이전의 사랑과 이별 등의 개인적인 정서가 아닌 세상에 대한 그녀의 시선을 담고 있다. 게다가 그 시선은 세상의 밝고 아름다운 곳이 아닌 어둡고 괴로운 곳을 향한다. 그녀는 L.A의 이곳 저곳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경제적인 문제로, 피부색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절망은 단순히 그들이 삶을 잘못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생각했다.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이 그들을 절망으로 내몰았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녀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인간의 가치’란 이름의 앨범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만을 보지 말라고 노래한다. 아름답고 밝은 것만 꿈꾸지 말라고 한다. 대신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좌절과 절망의 사건,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현장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서로를 돕고 사는 인류애를 회복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1950,60년대를 느끼게 하는 블루스, 소울, 펑키 사운드를 적극 사용한 것이 흥미롭다. ‘It Gonna Come’. ‘Don’t Misunderstand’, ’Same to You’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들 곡에 흐르는 블루지한 맛이 강한 거친 기타와 끈적거리는 오르간, 작렬하는 브라스 섹션, 그리고 펑키한 리듬은 절로 과거를 그리게 만든다. 여기에 채도와 명도를 낮춘 전체 사운드의 질감 또한 앨범의 복고적 느낌을 강하게 한다. 이를 위해 그녀는 프랑스 출신의 엔지니어 막심 르길의 도움으로 빈티지 아날로그 장비로 앨범을 녹음했다고 한다. 믹싱에서도 섬세한 주파수 조정을 통해 뜨겁지만 차분하게 정돈된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복고적인 사운드를 선택한 것일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위한 단순한 선택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Preacherman’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이 곡은 1955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백인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 숨진 채로 미시시피 강에 버려졌던 소년 에밋 루이스 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미국 시민 운동의 촉매 역할을 했다.
이 오래 전의 이야기에 멜로디 가르도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종차별로 인한 야만적 상황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으리라. 실제 2012년, 트레이번 마틴이라는 17세의 비무장 흑인 소년을 백인 자율방범대원이 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지난 해에는 미주리에서 18세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최근에는 볼티모어에서 25세의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경찰을 보고 도망치다 체포되어 구금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해 폭동으로 번져 지금까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 결과 꼭 인종 차별만을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회적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시민 운동이 발기했던 시절의 음악에서 새로운 음악의 영감을 찾게 된 것 같다. 여기에 감칠맛 나는 기타, 거친 브라스 섹션 등이 만들어 내는 펑키한 리듬, 가스펠적인 코러스를 배경으로 주술적인 느낌마저 주는 멜로디 가르도의 보컬이 어우러진 ‘She Don’t Know’에서 들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등의 거리 소음을 사용한 것, ‘Preacherman’에서 페이스북의 팬들이 집에서 녹음한 합창을 받아 인트로로 사용한 것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움직임으로 뜨거웠던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해서 앨범이 무조건 선동을 하겠다는 식의 강렬한 리듬만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곡들도 뜨거운 곡들 사이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특히 멜로디 가르도가 노래 뿐만 아니라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곡들이 그렇다.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Morning Sun’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차분한 피아노와 담백한 리듬을 배경으로 자장가처럼 포근하게 흐르는 멜로디 가르도의 노래가 어둡고 슬픈 현실에서 한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그녀가 현실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클레망 뒤콜의 편곡하고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만들어 낸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영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If Ever I Recall Your Face’와 ‘Once I Was Loved’는 사운드는 물론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가슴 아픈 분위기 등 <My One and Only Thrill>의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기존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게는 가장 큰 만족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어쩌면 개인적인 만족, 휴식을 위해 음악을 듣기에 이 앨범이 사회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 개인적인 사랑, 이별, 기쁨, 슬픔을 담은 노래에 익숙한 감상자들에게 사회적 어두움을 주제로 한 노래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멜로디 가르도는 결코 사회적 메시지를 위해 음악을 희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리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아도 음악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이번 앨범은 인류애로 가득한 메시지만큼 상당히 매력적이다. 제대로 끈적거리며 제대로 흥겹고 제대로 영혼의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음악적 쾌감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그녀의 메시지를 느끼게 한다.
특히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Once I Was Loved’는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와 음악이 가장 그녀다운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이 곡에서 그녀의 슬프디 슬픈 노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한때 나도 사랑 받는 존재였다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회한의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그것을 인류애로 밝히자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고 일종의 경고처럼 무겁게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가슴 한 쪽에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 대한 위로로 다가온다. 과거 빌리 할리데이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 노래로 우리를 위로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녀가 말한 인간의 가치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사랑할 때 고양되는 것이 아닐까? 정답은 당신이 앨범을 듣고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