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개인적으로 일본인들의 연주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이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국민정서의 영향이라기 보다는-일부분이 있을 지는 몰라도-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같은 아시아권 국가의 연주자라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한다. 즉, 이 친구들도 하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스스로 제기되면서 아직은 요원한 우리 재즈의 현실에 언짢아 지는 그 경험이 싫어서 일본의 연주자들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우리 재즈의 아쉬움에 대한 반응이랄까?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게리 피콕, 폴 모시앙이라는 중요하고 훌륭한 연주자들과 테터드 문을 결성한 마사부미 기구치도 순수한 시각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 접했던 이들의 앨범 <First Meeting>(Winter & Winter 1998)에서 존 콜트레인과 키스 자렛을 연상시키는 기구치의 연주를 들으며 질투 반, 저주 반이 섞인 감정이 들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들으면서 그런 시기는 이제 접어두어야 함을 느낀다. 오히려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적인 것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아이콘으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사랑만큼 각 곡들이 지닌 고정된 이미지는 자신의 색을 덧칠해야 하는 재즈 연주자에겐 큰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사부미 기구치가 에디트 피아프라는 고전에 접근하는 방법은 매우 유연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피아프의 곡을 해체하는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원 곡의 멜로디를 중요시하면서 그 위에 연장의 형식으로 자신의 색을 붙여 나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두 부분의 상이함은 단순한 진행의 왼손과 속도의 조절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분위기 상으로는 에디트 피아프와 완전히 다르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멜로디의 친숙함은 전혀 왜곡되지 않았다. 또 무드만을 조성하는 그런 상투성으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원곡들에 담겨있는 끈적한 슬픔들은 기구치의 진지함에 의해 절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앨범에 최상의 평가를 내리기를 주저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폴 모시앙의 드럼 때문이다. 사실 이 앨범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놀랍게도 잠시나마 폴 모시앙이 에디트 피아프의 세션을 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폴 모시앙의 연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곡 중에는 당시 유행했던 3박자의 왈츠리듬 곡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 3박자 곡을 재즈에서 연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원 곡을 중시하는 자끄 루시에도 에릭 사티의 ‘Gymnopedie’를 연주할 때 3박자를 4박자의 곡으로 바꾸어 연주했는가 하면 재즈에서 3박자 곡으로 유명한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의 경우-모시앙 본인이 참여한!-3박을 한 박 반씩 둘로 나누어 연주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모시앙의 3박자곡 연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길을 가고 있다. 즉, 아예 박자표현을 내부로 감추고 특유의 뉘앙스 위주의 연주로 가지도 못하고 반대로 시원하게 박자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인가 안정된 방향을 찾으려 하면서도 앨범의 끝까지 그 탐색만 할 뿐 자리를 잡지 못하는 매우 불안한 순간들이 종종 연출된다. 너무 자기만의 길을 고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편 이런 문제는 녹음의 지원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더 악화된다. 고역대가 부족한 피아노는 그래도 이해할 만하나 모시앙의 드럼에 윤기를 주지 않았음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피아노와 베이스를 감싸려 하는 모시앙의 드럼을 음량조절을 통해 멀리 떨어뜨려 놓아 혼자 노는 개별 악기로 전락을 시켰을 뿐 아니라 부족한 잔향으로 심벌의 여운을 살리지 못했다.너무나 건조한 드럼 사운드는 모시앙의 심벌을 위주로 한 뉘앙스 연주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첨단 기술과 음악적 결과는 완전한 상관관계를 이루지 않음을 이 앨범은 증명한다.
만약 굳건히 중심을 지키는 게리 피콕의 베이스와 기구치의 듀엣으로만 앨범이 녹음되었다면 정말 멋진 앨범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