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ng Forth By Day – Cassandra Wilson (Legacy 2015)

빌리 할리데이를 현재로 소환하다

CW

2015년 4월 7일은 빌리 할리데이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빌리 할리데이가 재즈의 3대디바 중 한 명이고 그에 걸맞게 감동적인 노래를 많이 남겼던 만큼 이를 기념하는 앨범들과 공연이 2015년 4월을 장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녀와 어깨를 겨루었던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과 달리 그녀는 작곡에도 능력이 있어 10여 곡의 노래를 남겼고 그 가운데 다수는 스탠더드 곡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삶, 내면을 노래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도 표현하고픈 욕구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제 그녀의 노래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비극적이었던 그녀의 삶을 절로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다른 누구보다 음악적 탐구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삶과 음악 모두에서 워낙 개성이 강했기에 그녀를 주제로 한 자신의 노래 혹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실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와 관련이 있는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거칠고 건조한 목소리를 만들어 낸 삶을 이해하고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카산드라 윌슨의 빌리 할리데이 헌정 앨범이 바로 그 모범을 보여준다. 소니로 이적해 처음 발표하는 이 앨범에서 그녀는 빌리 할리데이의 삶과 그 음악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개성강한 음악을 들려준다. 단지 빌리 할리데이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음악을 새로이 해석해 고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려 한다.

이것은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알 수 있다. 앨범 타이틀은 보통 ‘사자(死者)의 서(書)’로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사후세계 안내서의 원 제목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미이라 옆에 파피루스나 가죽에 상형문자로 씌어진 이 책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책이 죽은 사람을 내세에서 만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다시 부활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에 걸맞게 카산드라 윌슨은 빌리 할리데이를 21세기에 다시 소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앨범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빌리 할리데이가 살아 있다면 자신이 노래했던 방식을 재현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선으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라 말한다. 실제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그 동안 있었던 빌리 할리데이 추모 앨범들과는 다른 색다른 질감을 띄고 있다. 우주적이기까지 한 몽환적인 톤의 기타가 편재하며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런 중에 색소폰, 클라리넷 등이 재즈와 블루스의 전통을 반영한 솔로를 펼친다. 그리고 전체적인 질감은 록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칠다. 그 결과 사운드는 탈시간, 탈공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자(死者)가 세상을 떠난 직후 저승에 도달하기 전에 거치는 중간계의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괴기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황량함을 바탕으로 한 색다른 분위기와 질감은 빌리 할리데이 애호가들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사실 카산드라 윌슨 애호가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황량한 질감은 <Glamoured>(2002) 등의 앨범에서 맛보았던 것이고 몽환적이며 탈 시간적인 질감은 <Thunderbird>(2006)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인의 음악을 새로이 해석하는 것은 이미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헌정 앨범 <New Moon Daughter>에서 보여준 바 있다.

빌리 할리데이를 21세기로 불러내기 위해 그녀는 의외의 인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재즈 밖에 위치한 연주자들을 기용한 것이다. 먼저 앨범의 제작을 닉 케이브, 아케이드 파이어,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 등의 록 앨범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닉 로내이에게 맡겼다. 그리고 블루지한 감각이 뛰어난 티 본 버넷과 예 예 예스의 닉 진너에게 기타를, 닉 케이브의 그룹 배드 시즈의 리듬 연주자인 마틴 R. 캐시와 토마스 위들러에게 각각 베이스와 기타를 맡겼다. 여기에 스트링 오케스트라 편곡은 반 딕 파크에게 의뢰했다. 참으로 과감한 선택이라 하겠다.

재즈 쪽에 가까운 연주자들 또한 그녀와 함께 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피아노 연주자 존 코허드와 기타 연주자 케빈 브레잇, 그리고 곳곳에서 매우 인상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색소폰 연주자 로비 마샬이 앨범의 음악적 정체성을 재즈에 머무르게 하는 데 일조했다.

연주자들과 함께 카산드라 윌슨은 빌리 할리데이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곡들을 선택하고 그 가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뒤 어떻게 하면 각 곡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다고 어떤 스타일, 방법을 모든 곡에 적용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함께 한 연주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그들의 조합이 만들어 낸 우연의 사운드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그 결과 유기적인 흐름이 느껴지면서도 각 곡이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한편 고인의 음악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도 카산드라 윌슨은 이 앨범이 빌리 할리데이를 추모하는 것임을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일단 레퍼토리가 이를 말한다. 12곡의 수록 곡 가운데 ‘Don’t Explain’부터 ‘I’ll Be Seeing You’에 이르는 11곡은 모두 빌리 할리데이가 작곡했거나 즐겨 불렀던 스탠더드 곡이다. 따라서 감상자들은 사운드의 질감에서 차이를 느끼는 한편 카산드라 윌슨의 노래에서는 빠른 템포의 곡에서도 슬픔을 느끼게 했던 고인을 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빌리 할리데이의 삶을 알고 있는 감상자라면 이 앨범의 흐름이 그녀의 삶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앨범은 이러한 그녀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 곡 ‘Don’t Explain’에서는 10세의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인종차별로 인해 감화원에 수감되고 나아가 거리의 여자로 전락했던 어려운 삶에서도 루이 암스트롱과 베시 스미스의 음악을 들으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꾸었던 소녀의 모습이 ‘Crazy He Calls Me’는 사랑에 대한 기대가 ‘All Of Me’에서는 무대 위에서는 여신 대접을 받았지만 무대에 내려오면서부터는 클럽의 정문으로 출입할 수 없으며 백인 동료 연주자와 떨어져 흑인 전용 숙소를 찾아 헤매는 등 치욕적인 차별을 음악적 열정으로 버티려 했던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곡으로 백인의 집단 구타로 인해 사망해 나뭇가지에 목이 매달려 흔들리는 흑인을 이상한 과일로 표현한 루이스 앨런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Strange Fruit’은 버티려 했지만 결국엔 세 번의 결혼 실패와 인종차별의 트라우마로 인해 술과 마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절망적 삶을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I’ll Be Seeing You’에서는 죽음의 그림자를 그리게 한다.

서서히 파멸로 향해가는 유명 재즈 보컬의 삶을 그린 가상의 사운드트랙은 ‘Last Song’으로 막을 내린다. 이 곡은 이 앨범을 위해 카산드라 윌슨이 참여한 연주자들과 공동 작곡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독특하다. ‘마지막 노래’라고 해서 빌리 할리데이에 대한 마지막 노래로 생각하게 만들지만 사실 이 곡은 부제 ‘For Lester’가 의미하듯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을 위한 곡이다. 색소폰 연주자는 빌리 할리데이에게 레이디 데이(Lady Day’라는 애칭을 붙여줄 정도로 그녀와 애틋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소울 메이트가 사망했을 때 그녀는 바다를 건너 급히 장례식장에 왔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기리는 노래를 하려고 했지만 그 가족에 의해 거절 당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이 곡은 이러한 황망한 상황에서 빌리 할리데이가 고인에 대해 불렀을 마지막 노래를 상정하고 있다.

참으로 우회적인 방식으로 빌리 할리데이의 사망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셈인데 그래서인지 곡의 분위기는 슬픔, 허망으로 가득하다. 특히 ‘이게 그대를 위한 마지막 노래에요’라고 나지막이 말하듯 노래하는 마지막 부분은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래서 앨범이 끝나고 침묵이 찾아올 때 당신은 빌리 할리데이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카산드라 윌슨의 이번 앨범은 헌정의 의미에 매우 충실한 앨범이 된다.

앞으로도 빌리 할리데이 추모 앨범은 끊임 없이 제작될 것이다. 하지만 카산드라 윌슨의 이번 앨범만큼 비범한 앨범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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