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가 ECM에서 앨범을 녹음한다고 했을 때 나는 과연 역동적이고 뜨거우며 현란하기까지한 그의 개성이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과 어떤 조화를 이룰까 궁금했었다. 보통 ECM의 제작자는 한 연주자의 현재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무엇을 꺼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피아노 연주자는 스트링 쿼텟과의 협연, 그리고 영상과의 조우 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이 음악들이 제작자의 요구에 피아노 연주자가 순응한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CT 레이블 등에서 보여준 그의 음악에 더 애착이 갔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아니다. 스테판 크럼프(베이스), 마커스 길보어(드럼)와 트리오를 이룬 이 앨범에서 그는 비교적 천천히 연주하기를 바라는 제작자의 취향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불꽃을 유감 없이 드러낸다. 그 불꽃은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 등 거장에 대한 존경부터 테크노 음악, 아프리카와 인도 음악에 대한 애착 등이 바탕이 되어 있다. 게다가 하나의 불꽃 안에 푸른색과 붉은색, 노란색이 어울려 있듯이 그 여러 성향이 ECM의 명징한 공간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그렇다. 피아노 연주자와 ECM의 만남에서 우리가 바랬던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