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단언하건대 올 연말이면 미국의 여러 언론 매체와 평자들은 로버트 글라스퍼의 이번 네 번째 앨범을 2012년을 빛낸 대표 앨범의 하나로 꼽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호평만큼 이 앨범을 두고 (미국) 재즈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 또한 많을 것이다.
이 앨범에서 텍사스 퓨스턴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는 재즈를 기반으로 네오 소울과 힙합을 결합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아니 역으로 네오 소울과 힙합에 재즈적인 맛을 곁들인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이 더 옳을 듯싶다. 이것은 각 곡마다 참여한 화려한 게스트의 면모를 보면 더 명확해 진다. 피아노 연주자의 단골 손님인 빌랄을 비롯해 에리카 바두, 랄라 하더웨이, 레디시, 뮤지끄 소울차일드, 미셀 은디지오첼로, 모스 데프 등의 네오 소울과 힙합을 이끄는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로버트 글라스퍼의 자작곡과 데이비드 보위의 ‘Letter To Hermione’, 샤데이의 ‘Cherish The Day’, 너바나의 ‘Smell Like A Teen Spirit’등의 곡을 평소 자신들이 하던 식대로 노래하고 랩을 한다. 그러니 재즈의 색채가 적은 것은 당연한 법. 실제 로버트 글라스퍼의 피아노 연주만이 재즈의 흔적을 드러낼 뿐 나머지 부분은 그냥 네오 소울이나 힙합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실 로버트 글라스퍼는 이전부터 재즈와 힙합, 네오 소울을 가로지르고 이를 결합하는 음악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이번만큼 재즈가 덜 느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앨범의 주인을 로버트 글라스퍼가 아닌 그의 그룹 익스페리먼트를 앨범의 주인으로 표기한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이전에도 재즈가 외부에서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얻긴 했지만 결국엔 성장동력을 상실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앨범의 타이틀이 <Black Radio>인 것도 현재 흑인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것은 재즈가 아니라 네오 소울이나 힙함임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재즈는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이 앨범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다.
재즈와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올 해의 재즈 앨범으로 이 앨범이 기록되리라 말한 것은 이 앨범의 화두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너무나도 훌륭한 매무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앨범 전체의 유려한 흐름과 정돈된 사운드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피아노 연주를 들어봐라. 장르적 정체성과 상관 없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이 앨범을 들으며 재즈를 느낄 것이다. 이 앨범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