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기획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이판근이란 이름을 현재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 한국 재즈사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이판근이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그가 베이스 연주자이긴 했어도 작, 편곡과 후배 양성에 더 많은 공을 들였고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그리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의도하지 않은 신비주의는 그를 신화적인 인물로 생각하게 했다.
이 앨범은 그가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며 밴드를 이끈 앨범은 아니다. 그의 곡을 손성재를 중심으로 오정수, 남경윤, 김성준, 김인영, 이도헌 등 한국 재즈의 현재를 이끌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해석한 곡들을 담고 있다. 일종의 송북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를 통해 프로젝트는 이판근의 곡이 담고 있는 보편성과 한국적인 측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손성재의 첨예한 현대적 감성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솔로 인트로로 시작되는 ‘Famellogy’나 한국적 선율, 한국적 우수가 농밀한 ‘소월(素月)길’, ‘강’같은 곡은 이판근을 왜 후배 연주자들이 그토록 존경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그가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했다면,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섰다면 한국 재즈의 역사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기왕이면 그가 직접 밴드를 이끈 앨범이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