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줄리아 휠스만의 이번 ECM에서의 네 번째 앨범은 남성 보컬 테오 블렉만과의 협연을 담고 있다. 편성은 지난 앨범 <In Full View>(2013)에서 첫 선을 보인 쿼텟 그대로이다. 그녀와 테오 블렉만은 1990년대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함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중 2013년 독일 데사우에서 열리는 쿠르트 바일 페스티벌에서 테오 블랙만과의 협연을 제안해 함께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결과가 좋아 이렇게 2014년 스튜디오에 모여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녹음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쿠르트 바일은 베르톨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를 비롯해 여러 뮤지컬과 영화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다. 그는 클래식을 공부했지만 재즈의 영향을 받아 대중적인 성향의 곡을 많이 만들었다. 그 가운데 ‘Mack The Knife’, ‘September Song’, ‘Speak Low’는 스탠더드 재즈곡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줄리아 휠스만은 단순히 스탠더드 재즈곡을 연주하듯이 쿠르트 바일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작곡가의 곡을 음표가 나열된 악보상태로 되돌린 후 여기에 그녀의 시성(詩性)을 부여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곡으로 바꾸어버렸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Mack The Knife’가 대표적이다. 보통 경쾌하게 연주되고 노래되던 이 곡을 그녀는 서정적 발라드로 바꾸어버렸다. 쿠르트 바일을 시적으로 연주하기로 그녀가 마음 먹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함께 연주한 그녀의 자작곡을 보면 알 수 있다. ‘Beat! Beat! Drums!’, ‘A Noiseless Patient Spider’ 등 자작곡에서 월트 휘트먼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쿠르트 바일의 그림자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테오 블랙만의 보컬이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전통적인 재즈 보컬과는 거리가 있다. Winter & Winer 레이블에서의 발표한 앨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중저음보다는 미성으로 시를 낭송하거나 연극적인 분위기로 노래를 해왔다. 이번 앨범에서도 깃털처럼 부유(浮游)하는 듯한 그의 노래는 곡에 극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특히 원곡의 멜로디를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긴장을 통해 만들어 낸 신비로운 분위기는 줄리아 휠스만의 시정과 완벽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 때문에 쿠르트 바일 페스티벌이 피아노 연주자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 아닐까?
한편 톰 아더의 트럼펫 연주에도 특별한 주목이 필요하다. 그의 트럼펫은 보컬과 함께 꿈결을 거니는 한편 피아노가 만들어 놓은 고요의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In Full View>에서 보여준 표현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 연주이다.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을 꾸준히 지켜본 감상자들은 어쩌면 그녀가 ECM 레이블 이전 ACT 레이블에서 여러 보컬들과 함께 했던 앨범들과 이 앨범을 비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그녀가 이번 앨범에서 ACT 시절보다 한 단계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음을 확인할 것이다. 나아가 재즈의 매혹이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채로이 변화하는 것에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미성의 남성 보컬곡을 듣다가 문득 피나 바우쉬가 생각이 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요즈음 희안하게 이런 현상이 종종 생기네요^^;
테오 블랙만의 목소리가 그런 느낌을 줄 수도 있죠. 어렴풋이 공감은 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