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로마노는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드럼 주자다. 자세한 그의 이력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특이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력으로 그가 한 때 키스 자렛과 연주를 했었고 또 이를 계기로 2000년 키스 자렛 트리오의 <Whisper Not> 발매를 기해 프랑스의 한 라디오 방송이 24시간 키스 자렛 특집을 하며 그와 인터뷰를 했을 때 그가 키스 자렛에게 말한 독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독설의 내용은 키스 자렛이 클래식을 접근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는데 재즈 연주자로서 클래식에 엄격함을 보이는 것을 비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부드러운 목소리로 태연히 내뱉었던 그의 독설은 인터뷰하는 기자를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의 성격이 인상과는 달리 유순해 보이지 않는데 의외로 그의 음악들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유러피안 리리시즘의 전형적인 예라고 찬사를 내리고 싶을 정도로 그의 곡들에는 향수와 노마드적인 서정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파올로 프레주를 기용했던 경우나 스테파노 디 바티스타를 기용했을 때는 물론 루이 스클라비, 앙리 텍시에와 했던 진보적인 트리오에서조차 발견된다. 내가 그의 서정에 놀라는 이유는 그가 다름아닌 드럼 연주를 한다는 데 기인한다. 피치를 조정할 수 없을뿐더러 장음을 발생할 수 없는 타악기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곡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성이 발견된다는 것이 일종의 아이러니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앨범 중 화자인 알도 로마노가 카페 데자르(Cafe des Arts)로 가는 방향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전 곡에 걸쳐서 그림같은 감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알도 로마노의 연주자체가 주는 감흥은 그 다음이다. 물론 상당수의 앨범에서 지나치게 애상조의 경향으로 흐른 곡과 그 진행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가벼운 감상에 빠지지 않고 진지함이 가득한 연주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전곡이 발라드로 일관되지 않는다. 매우 하드 드라이브한 ‘Storyville’, ‘Il Ritorno’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탈리아적 감상을 기반으로 하는 알도 로마노만의 정서는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각 곡들이 정서적인 면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 곡들은 앨범 전체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 악센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앨범의 타이틀인 ‘Corners’가 모퉁이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앨범이 주는 이미지는 하나의 여정, 그러니까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그 과정이다. 그러나 각 개별 곡이 지닌 이미지는 그 여정에서 볼 수 있는 세계의 다양함이 아닐지. 그러니까 코너는 또한 한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노가 실제 여행을 하며 작곡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해 그 여행 중 발굴한 연주자들을 기용했다는 것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제 로마노는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내는 인도자의 역할로도 훌륭하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드럼 연주자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것인데 아트 블래키가 그랬고 엘빈 존스가 그랬다. 이처럼 드럼 연주자들이 후진 양성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들이 드럼 연주자라는 사실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리다. 음의 높낮이와 길고 짧음의 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한 악기를 연주한다고 그 표현 욕구마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런 드럼 연주자에게 멜로디 연주자들은 그의 리드하에 표현욕구를 대리표현해주는 존재에 해당한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지우인 베이스의 미셀 베니타를 제외하고 모두 신인을 기용하고 있다. 물론 신인이라고 하지만 알도 로마노가 그들을 만난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앨범을 통해서 알도 로마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단지 그가 자신의 앨범에 신인들을 기용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그 신인들이 그의 지휘하에 자신들에 걸맞는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마우로 네그리의 클라리넷 연주다. 그의 연주는 재즈적인 전통보다는 클레즈머류의 민속적인 흔적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데 그로 인해 모던한 연주임에도 고풍스러운 맛이 난다. 여기에 팀 밀러의 기타는 마우로 네그리의 클라리넷과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동인의 하나로 작용하는데 그 역시 과거의 기타 연주자들을 전형으로 삼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팻 메스니의 영향-최근에 등장하는 기타 연주자들 중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되랴만-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은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로마노식의 서정이 제대로 드러나는 멋진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 지금가지 들었던 로마노의 앨범 중 대표작으로 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