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 레베카 크누스(강창래 역, 알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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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거를 보존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에 넘겨 미래를 구축하게 한다.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은 상당히 중요하다. 책의 내용에 따라 현재와 미래는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게 될 것이다. 즉, 책이 이데올로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역사에서는 책을 불태운 사건들이 상당히 많다. 예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책의 학살 행위(Libricide) 가운데 현재와 가까운 지난 20세기에 일어났던 다섯 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책의 학살 행위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책 학살,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했던 책 학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벌인 책 학살,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의 자기 부정적인 책 학살, 그리고 역시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탄압하면서 벌인 책의 학살이다. 이 책의 학살을 저자는 역사를 서술하듯 그 원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래서 무자비한 살육, 도시의 파괴만큼이나 도서관의 파괴, 책의 학살 또한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그 가운데 세르비아의 책 학살, 중국 문화혁명의 책 학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게 한다. 왜냐하면 책의 학살이 단순히 과거의 지움을 넘어 현재와 미래의 발전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의 학살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 저자는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큰 작용을 했음을 말한다. 이데올로기가 타자를 부정하게 되면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없애게 했다는 것이다. 역사왜곡의 일환이랄까? 그렇기에 나치는 게르만 독일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책만 남기고 유대적인 것, 슬라브적인 것을 기록한 책들을 없애려 했고, 세르비아는 이슬람을 비롯한 지역의 다문화적 기반을 이루는 모든 책들을 없애려 했으며, 중국은 공산주의에 저해된다 생각하는 그네들의 유교적인 전통이 배어 있는 책들을 없애려 했던 것이다. 이를 이야기 하면서 저자는 책을 학살하게 한 이데올로기로 민족주의,군국주의,제국주의,인종주의,공산주의를 언급한다. 이런 이념들이 빈약한 자기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반대되는 책들을 없앴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책 속에 나온 예들이 100년 이내의 가까운 과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정보가 갈수록 권력이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들은 어쩌면 더 빈번하게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를 들면 책의 검열, 금지된 책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같은 생각만 하게 만드는 폭력이다. 그리고 시간을 멈추려는 부질없는 노력이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이내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정의는 승리한다가 아니라 생각한다. 책의 학살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도 그 와중에 사라진 책들, 정말 중요한 책들이 있다는 것이다. 티벳이 박해를 받는 와중에 사라진 책들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불교 자체의 역사를 지워버린 것 같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누구나 이데올로기를 따를 수 있다. 그렇다고 타자를 허용하지 않는 폐쇄성은 피해야 할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교훈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듯이 책의 학살 또한 또 다른 교훈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서관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굳이 책의 학살을 떠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 책은 참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세르비아가 발칸 반도에서 행한 전쟁과 관련된 설명, 중국의 문화 혁명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명료하다. 그래서 500여 페이지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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