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John Taylor

피아노 연주자 존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나이로 74세,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중년 이후의 남성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늘 이런 류의 사망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전조가 수 차례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그의 떠남은 황망스럽다. 지난 해 서울에서 열렸던 <유러피언 재즈 페스티벌>의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미소는 그가 여전히 새로운 영감으로 연주를 이어갈 것임을 기대하게 했었다.

그는 지난 7월 15일 프랑스 세그레에서 열린 ‘사뵈르 재즈 페스티벌 Saveurs Jazz Festival’- 무대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에 실려간 모양인데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듯 싶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종종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오래 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지 진심은 아니리라. 존 테일러의 경우는 어땠을까? 무대에서 세상을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이 곡은 마저 연주해야 하는데…하면서 안타까워했을까?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의 사망에 명복을 빈다.

나이는 내 아버지와 같은 노장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선보인 앨범이 그리 많지 않다. 1970년대에 두 장을 내기도 했지만 그의 앨범 활동은 주로 2000년대에 집중되어 있다. 그 때까지 그는 케니 휠러, 노마 윈스턴과 함께 한 트리오 아지무스와의 활동과 사이드 맨 활동에 주력했다. 사이드 맨 활동 가운데에는 지난 해에 세상을 떠난 트럼펫, 플뤼겔혼 연주자 케니 휠러를 비롯해 피터 어스카인, 얀 가바렉, 존 셔먼과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서정성을 기초로 코드 진행 등을 열고 또 열어 추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주를 즐겼다. 그래서 때로는 서정적이지만 불안한 느낌의 연주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서정을 기대한 감상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연주가 비슷한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인기가 덜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서정성은 사실 솔로 활동보다는 사이드맨 활동에서 더 많이 드러나곤 했다. 예를 들면 피터 어스카인과 트리오를 이루어 녹음한 앨범들이 그랬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교적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베이스 연주자 스테판 케렉키와의 활동이 그랬다. 특히 지난 해 발매된 베이스 연주자의 앨범 <Novelle Vague>-개인적으로 지난 해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던-에서 그의 서정적 연주는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마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이 앨범의 수록 곡을 연주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곡을 연주하던 중이었을까? ‘ Ascenseur Pour L’Échafaud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나 ‘ A Bout De Souffle 숨막히는’같은 곡을 연주하던 중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Novelle Vague>이전에 그는 2011년 베이스 연주자와 듀오 앨범 <Patience>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과거 찰리 헤이든과 함께 했던 <Nightfall> 이상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 가운데 게리 피콕을 주제로 했던 ‘Gary’에서의 연주는 그의 피아니즘의 매혹적인 부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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