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트릭 모디아노를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쓴 책들을 번역본이건 원서건 거의 다 읽었다. 그래서 지난 번 파리에 갔을 때 그의 신작들을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이 번역되었음을 알고 무척 반가워했다.
이 책은 모디아노의 2004년작 <Un Pedigree>를 번역한 것이다. 제목을 ‘혈통’으로 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혈통 증명서’가 더 맞다. 동물 혈통 보증에 사용되는 단어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무척 내겐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이기 때문이다. 이미 문체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출생 이전 부모님 세대부터 자신의 20세 성인이 될 때까지를 차근차근 서술한다. 물론 빠져 있는 부분도 많은데 그것은 망각에 의한 것이다. 만약 이 이야기의 소설적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망각된 부분일 것이다. 그것을 복원하려 하거나 부드럽게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침으로써 발생하는 긴장이 이 책을 소설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건대 이 책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이다. 괜히 자전적 소설이니 하면서 ‘소설’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사실 이미 그는 <도라 브루더>를 통해 다큐멘터리식 접근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내세우긴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그 동안 그가 어느 정도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설적 상상으로 바꿔왔었음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자신의 보물 창고를 그냥 개방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는 더 이상 희미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아니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지난 해 이미 그는 <Dans Le Cafe De La Jeuness Perdue, 잃어버린 청춘 카페에서>라는 소설을 썼다. 제목으로 보아 역시 어른 세계에 둘러싸인 한 청춘의 희미한 과거에 관한 이야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드러냈을까? 자신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까? 실제 이 책을 통해 본 모디아노의 삶은 소설 그 자체다. 철 없는 어머니, 늘 무엇인가 어두운 일을 꾸미는 아버지, 기숙사 생활, 어른들의 세계 근처를 배회할 수 밖에 없는 모디아노의 유년, 동생의 죽음….소설적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신비는 신비로 남아야 한다. 굳이 이해하려 한다면 이 책으로 그는 자신, 어느덧 그의 모든 소설 속 주인공들과 동화되어버린 자신에게 정체성에 대한 환기를 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60세를 앞둔 시점에서 말이다.
아무튼 안타깝기는 하지만 모디아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정말 열린 판도라의 상자 같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전 그의 소설 속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안시, 생모, 런던, 파리 시절 이야기, 이차대전과 유대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책을 중개하면서 살아가는 청춘, 배우를 꿈꾸는 여인, 에테르에 대한 묘한 느낌, 늘 어른들의 세계에 더 친숙한 청춘, 감시자, 경마장 이야기 등 그의 이전 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나 주인공의 특징, 삶 등에 관한 소설적 이유를 이 책은 제공한다. 따라서 만약 모디아노의 소설 읽기를 이 책을 통해 시작한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선택이다. 다른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을 번역한 김윤진씨는 소설 해설을 말미에 붙였는데 그가 모디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해설이 너무나 전형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들을 많이 읽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모디아노에 대해 이루어졌던 해석을 이번 책에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희미해지는 과거, 마르셀 프루스트와의 비교 등은 사실 이 책에는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소설이라고 해도 기존 모디아노의 소설과는 다른 차원, 그러니까 이전 소설들의 희미한 과거 이야기에 대한 보온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즉, 이전 소설들에 대한 혈통 보증서가 바로 이 책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널리 알려진 작가론을 이 책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키스 자렛의 피아노는 자유롭다 이상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보다 책 자체의 세부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