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일 년에 한 권씩 읽고 있다. 확 사람을 끄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모던함의 매력이랄까? 지난 시대의 작가이기는 하지만 소설 안에 담긴 감성은 지금 이 시대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소설도 그렇다. 특히 내가 매력이라 느끼는 부분은 느릿한 전개이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지만 마음 먹고 긴박한 진행을 한다면 2장으로도 충분히 의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싶을 정도로 소설은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 그러니까 큰 사건이 없는 듯한 분위기로 천천히 사건을 드러낸다. 특히 첫 장이 그렇다. 이런 분위기가 나는 참 좋다. 그 느림이 소설을 개인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로 만들어 낸다고 본다.
하지만 느릿느릿 진행되는 사건의 파장은 매우 크다. 인간의 믿음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의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이를 시험하는 형의 이야기란 설정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정적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을 작가는 적당한 거리에서 관념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확실한 결말의 느낌을 지지도 않고 마무리 한다. 그런데 그 느릿한 구성이 한편으로는 작가가 상당히 섬세하게 기획하고 구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초반의 결혼 후 반 미친 상태로 돌아온 여인의 이야기, 중반의 사랑에 실패하고 눈이 멀어 다시 만난 연인을 옆에 두고 보지 못하는 여인의 이야기 등 삽화처럼 처리된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형 이치로의 상황에 맞물리는 것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결말을 종교적인 화두로 끌고 가는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실존주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결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소설 속 인물들은 일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부유한 계층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연을 관람하고 여행을 즐기는 여유가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심리적인 사건을 겪을 수도 있다. 또한 주인공 나와 형은 서양 철학, 문학, 미술 등에 조예가 깊은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부분이 작가의 소설에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본다. 작가 스스로 참으로 다양한 관심사를 지녔구나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또한 이러한 중산층적인 세계관은 비슷한 시기의 우리 한국 소설과는 다른 차이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갑과 을의 관계였던 당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말해준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당시 걱정 없는 삶이었고 한국인들은 괴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참으로 실력 있는 작가라 생각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이미지가 한 때 일본 지폐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내겐 다소 뜻밖의 일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느낌이 나는 소설들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가 국민작가 대접을 받은 것은 작품의 뛰어남도 있지만 그 안에 잘나가던 일본의 모습, 정서-모던한-가 은연 중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이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그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