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었다. 대학시절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뷰>이후 처음인 듯하다. 사무엘 다쉴 해미트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말타의 매>로 유명하다. <피의 수확>은 <말타의 매>와 함께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런데 추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액션소설이라고나 할까?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비밀을 풀어나가는 탐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총을 쏘고 총을 피하며 몸으로 사건을 거칠게 해결해 나가는 탐정의 이야기다. 실제 주인공 ‘나’는 의뢰인과 관련된 사건을 소설 도입부에 바로 해결한다. 그리고 그는 1920년대 후반, 금주법으로 인한 여러 부정이 있었던 시대의 한 도시를 잡고 있는 네 주요 인물들을 이간질로 서로 싸우게 하여 도시를 평정한다. 그 과정에 추리보다는 총격전 등이 더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나’의 성격도 다른 추리소설의 주인공들과는 좀 다르다. 그는 냉혹하리만큼 계산적이며 임기 응변에 강하다. 그리고 대범하다. 또 그러면서도 탐정답게 비약적으로 추리를 잘 한다. 그러니까 현재 액션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의 원형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주요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인상도 받는다. 주인공과 자주 부딪히는 여성 ‘다이너 블랜드’정도가 개성을 드러낼 뿐이다. ( ‘나’와 ‘다이너 블랜드’사이에는 사소한 키스 신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하드보일드 하게 느껴진다.)
한편 하드보일드 소설답게 이 소설은 불필요한 과장이 없다. 영화의 장면을 구분하듯 짧은 장을 설정해 놓고 숨가쁘게 사건이 진전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사건들을 상당히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번역에 문제가 많다. 사실 번역자 ‘이가형’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그래도 종종 번역자로서 그의 이름을 여러 책에서 본 기억은 있다. 아마도 이 번역자는 영어가 전문이 아니라 일본어가 전문이 아닐까 싶다. 일단 이 책이 77년에 초판이 나왔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일본 서적을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실제 책에는 간간히 일본식 한자표현을 그대로 빌어 쓴 듯한 문장이 등장한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비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은 문제다. 여기에 조사나 문장 부호의 실수로 의미가 거꾸로 변하는 문장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묘사 이상으로 대화가 상당히 중요한데 인물들의 대화 시 말투가 상당히 어색하다. 거친 주인공이 갑자기 공손한 어조로 말을 하는가 하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인물들간의 대화인데도 어투가 동갑내기의 대화처럼 나온다. 또한 기본적으로 인물들간의 대화가 그다지 현대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77년 초판이 나온 이후 계속 표지를 바꿔가며 출반이 되는 와중에도 교정, 교열과정을 거친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줄거리만 따라갈 정도의 번역이기에 독서 또한 줄거리를 따라가기 쉽다. 그러면서 추리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읽은 김에 읽어야 할 추리 소설 몇 편을 챙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