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를 여름에 읽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그와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5년에 걸쳐 조금씩 나눈 대화를 엮었다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느꼈을 것이다. 자신과 취향이 맞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데서 오는 외로움을. 나 또한 마찬가지다. 가끔 재즈를 듣는 주변 지인들과 만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리 글쓰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한편 생각하면 음악은 혼자 들어야 그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이 음악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을 수도 있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를 거쳐 미국에서 살고 있고 다니엘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으로 독일을 거쳐 이스라엘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으로 대립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두 사람은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각각 서로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현 예루살렘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베토벤, 바그너 등의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평행과 역설’이란 것은 바로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두 사람의 ‘평행과 역설’의 관계를 찾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역시 아마추어라고 해도 뛰어난 피아노 연주력을 지녔지만 그는 감상자나 비평가의 입장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은 지휘자로서 음악의 생산자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해나간다. 또한 바흐, 베토벤, 바그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감상자라는 공통의 입장에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해 나간다. (그러니 대화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따라서 ‘평행과 역설’은 ‘공통점과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대화의 진정한 주제는 차이의 아우름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정체성, 세계화에서의 지역성(개성)의 문제, 예술의 진정성, 정치, 대중의 관성 등에 관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지만 내게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발언들이 인상적이었다. 공간과 소리의 물리적 특성을 먼저 고려하는 그의 지휘 방식,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악보의 해석, 고전의 영원성에 관한 생각들이 특히 그랬는데 이를 통해 클래식이 어째서 지금까지 생동의 음악으로 살아남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 재즈와는 다르지만 클래식 역시 순간적인 측면이 있는 음악, 따라서 단순히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다 더 클래식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PS: 재즈에 관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어 기록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