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메시니는 결혼을 했을까?’
글을 쓰기 위해 팻 메시니의 음악을 듣다가 갑작스레 들었던 의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팻 메시니의 음악을 들어왔지만 이처럼 뜬금 없는 호기심이 생기긴 오늘이 처음이다. 더구나 나는 유명 연주자의 삶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연주자는 음악으로 자신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생활, 가족관계가 널리 공개된 재즈 연주자보다 그렇지 않은 연주자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팻 메시니의 결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음악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연주자답게 그는 다른 누구보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쉴 땐 쉬겠지만 한번 시작하면 그의 공연은 이동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이어진다. 말하자면 공연이 일상인 셈이다. 설령 공연이 없는 날, 기간이 있다고 해도 왠지 나는 그가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새로운 곡을 작곡하거나 연주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 같다. 2003년에 발매된 솔로 앨범 <One Quiet Night>이 그랬다. 새로 장만한 바리톤 기타를 집에서 혼자 연주하면서 녹음한 것이 그대로 앨범이 되지 않았던가?
이처럼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한다는 그의 이미지는 쉽사리 그의 음악 외적인 삶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아니 음악을 통해 그의 삶을 다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실제 그의 음악은 어디론가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는 여행자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네 식으로 말한다면 역마살(驛馬煞)이 끼었다고 할까? 길 끝에 이르렀다 싶으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 운명인 여행자. 이것은 1년에 10개월 정도를 빽빽한 공연 일정을 따라 낯선 곳-어쩌면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을 지도 모르는-을 향하는 팻 메시니의 삶과 어우러져 그가 자신의 수행자 같은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기에 청바지에 흰색 바탕에 가로 줄무늬가 있는 셔츠가 주를 이루는 소박한 옷차림은 이런 신화를 강화한다.
그의 음악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 편곡, 밴드 연주가 뛰어나기 때문이지만 이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사운드 안에 담긴 여정의 이미지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의 음악은 감상자를 음악 이상의 차원, 새로운 상상의 차원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상상의 공간은 길 위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감상자는 팻 메시니의 음악을 들으며 한 밤의 고속도로를 외로이 달리거나(Are You Going With Me),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황금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거나(Last Train Home), 촉촉한 비가 내리는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거나(If I Could), 안개 자욱한 새벽 도로를 스르르 미끄러지듯 달리거나(Au Lait), 햇살 찬란한 시골길을 경쾌하게 지나가는(Dream Of The Return)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림 같은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는 그의 인기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정서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환기 시키는 음악은 얼마든지 있다. 뉴 에이지 음악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따라서 팻 메시니의 음악이 인기를 얻는 이유에는 여정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나는 여정의 이미지에 내재된 독특한 정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대한 상상을 넘어 꿈꾸게 만드는 정서. 우리는 현실의 삶이 건조하고 힘들수록 “지금 나의 삶이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며 자신만의 삶의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 팻 메시니의 음악에는 언제나 희망 같은 동경, 아련함이 느껴진다. 이것이 많은 감상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희망의 정서가 여정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겠다는 많은 문명의 이기가 나왔어도 여전히 일상을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팻 메시니의 음악을 통해 낯선 곳,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짜릿한 기대와 흥분이 기다리는 곳, 아직 도착하기 전이니까 언제든지 목적지를 바꿀 수 있다는 안도감이 지배하는 그 곳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팻 메시니는 음악에 여정의 이미지를 넣을까? 혹시 그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감상자만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팻 메시니의 음악을 들은 감상자 대부분의 느낌이 여행의 정서로 모아지곤 하니 말이다. 아니 그 전에 <Travels>, <Offramp>, <Road To You>, <Day Trip> 등의 앨범 타이틀이나 그 표지 이미지, 그리고‘Facing West’, ‘Are You Going With Me’, ‘Traveling Fast’, ‘Last Train Home’, ‘Goin’ Ahead’등의 곡 제목이 이동, 움직임과 강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에서 팻 메시니 또한 여정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여정의 이미지는 복잡하고 정교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다. 직선적인 듯하지만 여러가지 변박으로 이루어진 리듬이 전체 사운드에 끊임 없는 흔들림과 변화를 부여한다. 80년대 후반 ECM 레이블을 떠나 게펜 레이블-지금은 논서치에 통합된-로 자리를 옮기면서 브라질적인 리듬을 적극 차용한 것도 여정의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테마-솔로-테마로 이루어진 단순 구성을 넘어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서사적 구성 또한 움직임의 느낌을 강화한다. 여기에 정류장처럼 곡마다 설정된 터닝포인트를 향해 팻 메시니의 기타를 중심으로 한 여러 악기들이 하나를 이루어 리듬을 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탄탄한 연주가 여정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즉,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리듬과 수평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영롱한 팻 메스니의 기타(신디사이저), 환상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유발하는 보컬 등이 이상적으로 어우러질 때 여정의 이미지가 환상으로서 감상자에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팻 메시니의 음악에서는 그 외에 함께 하는 연주자, 밴드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 팻 메시니의 앨범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활동 가운데 PMG라 불리곤 하는 팻 메시니 그룹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들이 여정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팻 메시니의 결혼 여부로 화제를 돌려보자. 팻 메시니처럼 매일 같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수십 년을 길 위에서 지내다 보면 내가 있는 곳이 나의 집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또 그런 마음을 가져야 매일의 이동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내가 팻 메시니의 결혼 여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팻 메시니가 음악 외의 사생활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팻 메시니가 여자친구가 있느냐, 결혼을 했느냐, 혹시 게이가 아니냐, 음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외로울 것 같다는 질문과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검색 끝에 나는 그가 브라질에서 만난 한 여성과 결혼을 했고 두 명의 아이까지 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결혼유무를 이야기하는 해외의 한 게시판에서 2005년 미주리 주의 유니티 빌리지에서 찍었다는 가족사진까지 볼 수 있었다. 부모님, 형, 아내, 두 아들과 함께 한 사진에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다. 그는 외롭지 않구나. 음악 외에 그의 삶을 이루는 일상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팻 메시니의 결혼 사실과 가족 사진은 그와 그의 음악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그동안 나 혼자 선입견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은 공연 일정을 따라 세계 곳곳을 다니는 그가 사실은 누구보다 정착을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팻 메시니가 들려주는 여정의 음악이 목적지가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을 보자 팻 메시니가 사실은 집과 고향을 그리워했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그의 앨범들을 조망하자 그가 여러 앨범을 통해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해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1975년에 발매된 그의 데뷔 앨범 <Bright Size Of Life>에 수록된 ‘Unity Village’부터 시작된다. 이 곡의 제목은 그가 태어난 미주리 주의 고향의 지명이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앨범 <Watercolors>에 수록된‘River Quay’또한 고향의 한 지명을 의미한다. 그 밖에 1979년도 앨범 <New Chautauqua>에 수록된 ‘Country Poem’, 1987년도 앨범 <Still Life(Talking)>에 수록된 유명한 ‘Last Train Home’이나 이어 1989년에 발매된 앨범의 타이틀 곡 ‘Letter From Home’등이 늘 앞만 보고 나아가는 듯한 그가 늘 고향과 집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또한 동향의 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과 듀오를 이루어 녹음했던 1996년도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는 아예 고향 미주리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들 곡들은 하나 같이 컨트리와 포크의 영향하에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분위기로 연주되었다. 사실 팻 메시니는 부인할 수 없는 재즈 연주자이지만 그의 음악적 원천은 컨트리 음악이다. 흔히 알려졌다시피 기타 연주자로서 그는 웨스 몽고메리의 후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컨트리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2005년 2월에 있었던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어린 시절 엄지 피킹, 옥타브 주법 등을 연구하며 웨스 몽고메리처럼 연주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그러한 노력은 흉내내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만의 연주와 음악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재즈의 반대편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컨트리 음악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컨트리 음악 외에는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고향의 음악 환경에 기인한다. 그 결과 컨트리 음악은 역설적이지만 팻 메시니의 재즈를 팻 메시니만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 팻 메시니만의 동경, 아련함의 정서는 컨트리 음악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고향의 음악인 컨트리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재즈를 만들었다면 결국 길 위를 달리는 듯한 그의 음악이 향하는 목적지는 어쩌면 새로운 곳이 아니라 고향이나 집일 지도 모른다. 정말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힘든 줄 모르고 오랜 시간을 달려 고향집에 내려가는 우리네 마음처럼 그 또한 자신이 쉴 수 있는 집을 그리며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Last Train Home’은 집에 돌아가고픈 그의 마음을 그래도 드러낸 곡이 된다. 그렇다고 팻 메시니의 음악을 단순히 고향을 그리는 음악으로만 생각할 수만은 없다. 이것은 그의 음악이 지닌 다채로움을 퇴화시키고 낙관적인 정서를 무시한 채 상실의 음악으로 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컨트리 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컨트리 음악 자체는 아니다. 늘 앞을 향하는 재즈인 것이다. 그에게 재즈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진정한 목적지로 나아가게 하는 이동 수단이다.
목적지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방랑, 유랑의 삶은 혼란스럽다. 그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시간을 맴도는 것이다. 혼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그 막연한 걸음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것인가를. 자리를 잡고 휴식할 곳이 없다는 막연함이 주는 불안을. 이런 사람에게 내일은 모험이 아닌 피하고 싶은 오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여행은 돌아올 곳을 먼저 상정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부동의 지점이 있을 때 그는 더 멀리, 더 오래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즐기고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다.
팻 메시니 음악은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모습을 보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라는 동요 가사처럼 그는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공간으로 더욱 더 나아감으로써 고향을 향한다. 이 경우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도착한 고향은 그에게 위안과 함께 새로운 출발로 다시 작용할 것이다. 여기서 팻 메시니의 음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재즈로부터 나온다. 재즈는 그에게 늘 열린 자세로 모든 모험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를 통해 긴장 속에서 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힘을 준다. 여정의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팻 메시니의 음악이 뻔하거나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반복되지만 꾸준하게 그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의 차이는 그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로지 급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도착한다는 희망 속에 여행을 즐기고 새로운 만남을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 그의 삶에 있어 컨트리 음악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재즈를 만나게 된 것부터가 하나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1978년 팻 메스니 그룹을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게 된 것도 라일 메이스와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룹은 미국 외에 아르헨티나(페드로 아즈나르), 카메룬(리차드 보나), 멕시코(안토니오 산체스), 브라질(나나 바스콘첼로스) 등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연주자들을 맞이하고 떠나 보내면서 음악적 영역을 확장하고 그 가운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실제 1978년도 앨범 <The Pat Metheny Group>과 2005년도 앨범 <The Way Up>을 비교해보면 사운드 구성이나 정서적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발견 된다. 그러면서도 팻 메시니만의 여정의 이미지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밖에 그는 그를 재즈계에 알린 게리 버튼을 시작으로 오네트 콜맨, 짐 홀, 브래드 멜다우, 존 스코필드, 안나 마리아 요펙, 울프 와케니어스, 실예 네가드, 허비 행콕, 잭 드조넷, 데이브 홀랜드, 애비 링컨 등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양분을 얻었다. 또한 표현의 다양성을 얻기 위해 기타 신디사이저를 거의 최초로 사용하고 피카소 기타라 불리는 42현의 기타를 특별 제작한 것부터 혼자서 모든 악기를 조절하며 팻 메시니 그룹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던 <Orchestrion> 앨범 녹음까지 그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런 면에 있어서 팻 메시니의 음악은 하나의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외연은 평행상태를 이루지만 계속적으로 몸 안의 세포들이 새로이 생성되어 이전 것과 교체되는 생명체. 이러한 반복 속의 차이 생성이 그의 음악에 현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마약 중독자들처럼 감상자들이 애타게 그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단순한 반복이었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꾸준한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공연 일정을 살펴보았다. 뜻 밖에도 8월과 9월에는 공연이 없었다. 10월부터 하루 단위로 이동하는 빼곡한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뉴욕 근교의 집에서 가족과 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새 앨범 <Orchestrion>을 발매하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여행한 이후 맞은 여름 휴가는 그는 행복과 편안함 속에서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봄날의 바쁜 공연 일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10월부터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팻 메시니의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 속에서 더 멀리 나아간다.
Au Lait로 pat metheny를 알게 되었고, 이후엔.. Are You Going With Me가 정말 좋더군요.
한때 정말 열렬히 좋아했었는데…글을 읽고 나니 순간 그때 느낌이 몽글몽글 떠오르네요..^^
넵~
자신의 삶의 내용에 따라 음악도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거겠지요?..
어떤 시기가 좋다 나쁘다 판단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offlamp시절 즈음이 저에겐 최고였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결국 내게 최고란 것은 나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겠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