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열정이 있다. 그러나 그 열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현실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 작가 사드 카하트가 파리 좌안의 한 피아노 공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어릴 적 자신을 사로잡았던 피아노와 연주, 음악의 세계에 다시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서술한 책이다. 기승전결은 없지만 자전 혹은 소설처럼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읽는 부담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스타인웨이, 엘라르, 플레옐, 뵈젠도르프, 베흐슈타인 그리고 파지올리까지 피아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가구이자 과학이었던, 그리고 모두 저마다 특별한 소리와 추억을 담고 있는 피아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어쩌면 피아노의 각기 다른 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오디오파일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한편 이 책은 피아노에 대한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와 관련된, 작가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파리 피아노 공방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로 모두 피아노에 대한 자신만의 따듯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피아노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 서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에 대한 서로의 느낌을 자유로이 나누는 그런 관계를 보여준다. 이런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렇기에 나는 이 모두가 작가의 경험이란 사실에 작가가 매우 부러웠다.
또한 이 책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피아노 교육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들려준다. 콩쿨이나 진학을 위한 경쟁적 피아노 교육이 아닌 스스로를 위하며 음악을 느끼고 즐기는 연주 자세와 그 교육이 최고임을 밝힌다.
이 책은 “파리의 공방에서 잊혀진 열정을 재발견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우연히 피아노 공방에서 맘에 드는 소리를 내는 중고 피아노를 발견하여 이를 계기로 연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그래서 전문 연주자로 성공하는 식의 내용을 기대하면 안 된다. 분명 저자에게 잊혀진 열정은 피아노 연주를 즐기던 열정이겠지만 저자는 이를 단순히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에서 나아가 현재의 시점에서 피아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쏟는 것으로 발전시켰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은 피아노가 그리 다양하고 깊은 세계를 지녔던가? 하고 먼저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 놀람이 가라앉을 무렵이면 나는 무엇에 열정을 쏟고 사는 것일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