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85년에 초판이 발매된 것으로 내가 대학시절에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넘어갔다가 이번에 우연히 다시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막스 피카르트는 독일 출신으로 의사로 일하면서 글을 썼다. 이 책은 1948년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씌어졌다.
아무튼 이 책은 침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연, 역사, 도시, 문학, 인간, 언어 등 다양한 차원에서 침묵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침묵은 모든 것의 원형이다. 침묵은 언어가 발생하는 장이며, 삶의 여유이며, 영혼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지속되어 영원-부동의 의미에서-이 된다. 그렇기에 침묵은 인간과 세계, 우주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저자의 입장에서는 1940년대-는 갈수록 침묵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은 의미 없는 외침이 되며, 삶은 피곤해지며, 영혼은 쉴 곳을 잃고, 시간은 속도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소음 뒤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이 찾아와도 그것은 침묵이 아닌 공허와 부재에 지나지 않는다.
대략 이런 내용이 산문 형식으로, 그러나 현상학적인 숙고에 의해 차분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저자는 침묵을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것으로 본 것 같다.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에서 충만한 침묵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깊은 차원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해서였는지 몰라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누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침묵을 이리 깊게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간적인 측면이다. 물리적으로는 하나 스튜디오가 공간적 배경이겠지만 이를 넘어 음악 자체가 전달하는 공간적 느낌이 있다. 그것이 여유가 있으면 많은 상상,연상을 유도하며 감상자만의 의미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간은 침묵과 소리가 적절한 관계를 설정할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그 침묵은 음악이 잠재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막스 피카르트의 글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 있었다면 나와 그는 많은 부분 통하지 않았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