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에 이어 미셀 투르니에의 산문집을 다시 읽다. 사실 이 책은 김화영 선생이 번역을 하면서 <월간 현대문학>에 일부를 연재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실린 ‘미셀 투르니에와의 인터뷰’도 실었었다. 그래서 대략적인 분위기, 내용은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모음집에서 듣는 것과 정규 앨범에서 듣는 것이 다르듯 이번 기회에 책 값도 싸고 해서 선뜻 구입해 읽었다.
지난 <외면일기>처럼 이 책에 실린 미셀 투르니에의 글들은 일상의 세세한 것들에 애정을 담아 관찰하고 여기에 여러 다양한 직간접 경험을 가미하여 거기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상상력들의 깊이가 상당하다. 보통 우리는 산문 하면 가벼운 글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의 글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읽기에 버겁다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 그 글 안에 담긴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건축, 그림, 사진, 철학, 종교,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박식함이 묻어 나오는데 흔히 말하는 교양을 갖춘 사람의 전형이야 말로 미셀 투르니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목표를 지닌 나로서는 부러움과 함께 벽 앞에 선 듯한 막막함을 느낀다. 한편 때로는 삶의 잠언처럼 다가오는 그의 글들은 삶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깊이 있는 만큼 위트 또한 곳곳에서 느껴진다.
책은 ‘집, ‘도시들’, ‘육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이렇게 8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가운데서 이미지 부분에서 초상화부터 사진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이미지의 상관 관계를 파헤친 ‘권력의 이미지’ 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쉽게 그러면서 설득력 있는 글쓰기의 모범이었으며 그 내용 또한 상당히 풍부했다. 그리고 ‘나무와 길’이란 부분에서 현대 도시에 대해 날카롭게 진단한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여러 글들로 엮인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사람들은 몇 문구를 적어두고 기억하려 한다. 나 역시 그런 문구를 많이 보았고 하나는 적어두었다. 하지만 그 문구를 공개하지 않겠다. 그냥 읽고 스스로 발견하라 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