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조용히 좀 해요 – 레이먼드 카버 (손성경 역, 문학동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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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단편 문학을 대표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첫 번째 소설집을 읽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기억 때문이다. 옛날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읽을 무렵 누군가 “그럼 레이먼드 카버를 읽어보는 건 어때?”라고 했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은 말 그대로 단편적 내용을 닮고 있다. 그러니까 일반적 단편 소설이 짧지만 긴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는 정말 우리 삶의 한 순간을 담담히 옮긴다. 그가 옮기는 삶은 겉으로는 그럭저럭 봐줄 만 해도 그 아래에는 언제 붕괴될 지모를 위태로움이 감추어진 삶이다. 그래서 그 삶이 막 붕괴되려 할 그 때를 그려낸다. 어찌 보면 카프카적 불안이 내포된 삶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삶은 집, 가족, 직장 등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한, 어딘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데서 온다. 이것을 그는 짧은 문장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일견 건조하고 무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단 한 문장으로 인식의 비약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문학적 매력이다. 그 비약적 인식에서 그의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한편 그의 문장은 상당한 단문 중심이다. 상당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되는데 한편으로는 내용과 상관없이 (부정적 의미가 아닌) 대중적인 측면을 지향하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번역이 다소 이상한 데가 있다. 의미는 통하지만 뭔가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해석”에 가까운 번역 말이다. (다소 아쉬운 부분인데 때로는 그런 번역이 예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레이먼드 카버가 70, 80년대 작가임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 제목 “Will You Please Be Quietm Please?”인만큼 “조용히 좀 해줄래요? 제발?”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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