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 캐서린 쿠 쓰고 에이비스 버먼 엮음 (김영준 역 아트북스 2009)

캐서린 쿠는 1904년에 태어나 1994년에 사망한 미국의 큐레이터이다. 그녀는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1930년대 중반부터 캐서린 쿠 갤러리를 거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큐레이터 등을 역임하며 모던 아트의 다양한 변화를 몸소 겪었다. 그렇기에 책 제목인 ‘전설의 큐레이터’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그녀가 큐레이터, 혹은 미술 비평가로 활동하며 만난 16명의 예술가들을 조망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연구 논문적인 성격을 띈다거나 단순히 그녀와 예술가들 사이에 특별한 인연을 자랑하듯이 드러내는 서술은 피하고 있다. 그보다는 각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면들, 그리고 그 삶에서 나온 예술작품들을 차분하게 소개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꼭 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작가의 바이오그래피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경험한 작가들과 그 경험 속에서 느낀 작품들의 예술성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인데 이러한 그녀의 특별한 경험을 자신의 권위-애초에 그런 것을 드러내지도 않지만-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 또한 감상자의 입장을 견지한다. 조금은 특별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만난 예술가들은 다양한 사조들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지만 인연으로 본다면 마크 로스코를 중심으로 하나의 집합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소개된 16명의 예술가 가운데 (몬드리안, 페르낭 레제 등과 함께) 재즈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스튜어트 데이비스, 기계의 역동성을 그림에 담아내었던 (낙관적 미래주의자) 페르낭 레제, 색으로 정신적인 느낌이 강한 그림-그러나 실제는 자신의 명예와 그 영속성에 관심이 많았던-을 그렸던 마크 로스코, 덜어내기를 통해 동양적인 여백과 통하는 정서를 산출해 낸 프란츠 클라인, 빛이 주는 명암, Loneliness보다는 Solitude를 그렸던 에드워드 호퍼 등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캐서린 쿠의 삶이 부러워진다.

한편 이 책은 캐서린 쿠가 회상록 형식으로 집필을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책을 완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것을 미술사가 에이비스 버번이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그녀의 입장에서 보충하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문에 캐서린 쿠에 대한 이야기가 에이비스 버먼을 통해 전개되는데-그로 인해 이 책은 회상록의 성격에서 벗어난다-그에 의한 캐서린 쿠의 삶은 그 자체로 인간 승리의 삶, 전위적 여성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캐서린 쿠 본인은 이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사실 나는 현대 회화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감식안을 내가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재즈나 철학 등에 관련되어 감상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따라서 그림 그 자체를 보는 눈은 없다. 이 책을 읽은 후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이 책이 내게 미술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재즈 연주자들과 나의 관계설정에 대해서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음을 밝히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