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문화사 – 이원희 (말글빛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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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쓴 재즈에 관한 책이란다. 그것도 에세이류가 아니라 재즈와 그 역사에 관해 깊이 있는 생각을 담은 책이란다. 우리가 쓴 이런 류의 책이 없어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나갔다.

이 책은 몇 가지 차원에서 흥미를 끈다. 먼저 이 책은 재즈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단순 나열하는 역사서와 하나의 주제에 의거하여 특정 부분을 세밀하게 파헤치는 연구서의 중간 형태를 지향하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기본적으로 재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서술하지만 그것을 단순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각 시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해 나간다. (예를 들면 ‘자유와 책임’의 문제 같은 것을 통해 비밥의 즉흥 연주를 생각하는 식이다.) 그래서 저자가 서두에 말한 대로 전문가와 감상자의 중간 지점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게다가 때로는 좀 과잉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문학적인 풍모까지 갖추고 있어 딱딱하지 않은 독서를 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독특한 부분은 이 책이 한국에서 발간된 거의 모든 재즈 관련 서적과 대학원 논문을 기본 참고 도서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글 텍스트만을 갖고 조사하고 연구했다는 것인데 보통 한국에서 재즈 관련 서적이 없다고 말들을 하지만 실은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실제 외국에 나가 원서를 보아도 양은 방대하지만 그 질의 측면에서는 한국에 번역된 책들을 넘어서는 것을 만나기 힘들다. 단 차이가 있다면 개별 사조에 대한 연구나 연주자에 대한 연구서가 국내엔 아직 덜 소개되었다는 것일 뿐. 아무튼 한국어 텍스트를 기본으로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실제 저자가 각 장마다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을 보면 이들 도서들을 매우 오랜 시간 읽고 또 읽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마 저자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재즈에 대해 더 알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국내에 번역되거나 직접 저술된 책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종합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녔던 모양이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렇기에 전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구성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이 책은 앨범만큼이나 꾸준한 독서와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라 생각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재즈 감상의 모범적 길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아쉬움은 발생한다. 그것은 먼저 60여권의 한국어 텍스트와 30여편의 논문을 참조했다고 하지만 실제 몇 권의 책들이 참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부분은 깊은 사유를 통해 저자가 자신의  것으로 각 책들의 내용을 소화했다고 보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우리에게 소개된 재즈 관련 책들이 주로 프리 재즈 이후부터는 서술 분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맞추어 이 책도 하드 밥 이후의 재즈에 대한 서술에서 처음의 엄밀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서술 방식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실제 프리 재즈, 퓨전 재즈, 그리고 이후의 전통주의, 포스트 밥에 대한 음악적인 설명들은 상당히 모호하다. 대신 저자의 사유로 채우고 있는데 이 부분을 조금 더 컴팩트하게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공감 가는 사유를 진행하고 있지만 몇 가지 주제들은 하나로 통합해도 좋았겠다 싶다.

사실 프리재즈 이후의 서술에 있어 처음만큼의 엄밀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저자의 탓은 아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러하고 나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재즈가 프리 재즈 이후 미국을 벗어나 세계의 음악으로 나아가고 또 그 속에서 동시적 다양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보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차라리 참고 도서에서 조금 벗어나 앨범을 듣고 몸으로 체험한 이런 현재적인 면을 조금 더 부각시키는 서술이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ps: 이 책은 내가 쓴 졸저 <재즈>도 참고 도서로 활용하고 있다. 별것 아닌 작은 책을 정성껏 읽고 참조해 주어서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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