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고문님 댁에 갔다가 이 책이 보여서 빌려왔다. 90년대이 책을 보았을 때 막연히 서양인이 아닌 일본인이 쓴 책이라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국내에 발간된 재즈 관련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한 뒤 이 책을 찾았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이 책을 쓴 유이 쇼이치 1918년 생이다. 그러니까 뉴 올리언즈까지는 몰라도 스윙 시대부터 재즈를-비록 일본에서 살았지만-현재의 팝 음악으로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내가 파리 살 때 만났던 SP 앨범 애호가처럼 녹음의 구체적 차이, 녹음 시기의 정확한 연대적 나열 등에 상당한 애착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자료를 바탕으로 뉴 올리언즈에서 시카고로 재즈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 경제, 사회적 상황부터 밥의 탄생, 프리 재즈의 탄생 등을 박진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당대 잡지 등의 문헌 등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서술을 추상적이지 않게 한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인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요아힘 베렌트, 레너드 페더 등의 유명 재즈 평자들의 시선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견해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아마 이 책은 1970년대에 서술된 듯하다. 책의 내용이 퓨전 재즈의 탄생 즈음까지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명인들이 아직 죽지 않은 상황으로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재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이 책을 본다면 다소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재즈사가 아니라 오히려 2차 사료 정도로 이 책을 파악한다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된다.
유이 쇼이치는 재즈의 변화를 요아힘 베렌트의 10년 주기가 아닌 20년 주기로 바라본다. 그러니까 뉴 올리언즈 & 스윙-비밥, 쿨, 하드 밥-프리 재즈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일리는 있다. 왜냐하면 쿨 재즈와 밥은 사실 양식 자체의 차이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조들이 단절보다는 부분 단절을, 생성과 소멸이 아니라 교차 발전의 양태를 띄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런 논의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한편 재즈의 흐름을 서술하면서 밥의 탄생에 대한 부분을 독자적으로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이것은 비밥을 어느 개인의 창조물로 보지 않고 또 스윙과의 연속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루이 암스트롱이나 오넷 콜맨의 혁명과는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밥의 혁명에 대해서는 보다 더 명확한 논의가 필요했다. 오히려 쿨 재즈에 대한 서술에 더 큰 공을 들인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즈의 흐름 서술 중간에 중요 연주자들에 관한 서술을 적절히 삽입했는데 전기와 재즈사적 위치를 구체적인 사료를 섞어 서술한 것은 참 좋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특히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찰스 밍거스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다.
문제는 번역이다. 이 책은 역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역자의 약력 등 일반적인 책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 음악 책들의 경우처럼 대충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내 직원이 번역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는 일본어는 잘 할 지 몰라도 국어를 아주 못하는 듯하다. 문장의 호응이 전혀 맞지 않는 문장이 비일비재하다. 읽어가면서 스스로 저자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을까 유추하며 읽어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교열도 엉망이라서 단어 자체에 여백을 두는 등 띄어쓰기도 아주 엉망이다. 한마디로 대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각자 일부분을 맡아 대충 뜻만 통하게 번역한 모양새다.
이런 역사 책을 읽으면 한참 재즈에 빠져 이것저것 막 들을 때가 떠 오르고 또 다시 그런 감상의 충동을 받는다. 이 경우 한 때 일 때문에 들었던 1930년대 녹음을 다시 듣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