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에 태어나 194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소설을 읽었다.
사실 나는 서사를 좋아하지만 소설책을 구입할 때는 늘 한번씩 주저하게 된다. 그것은 내가 나름 책을 빨리 읽기에 금방 한 권의 책을 다 읽게 된다는, 그래서 계속 소설 책을 구입하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현대 소설이 가볍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소설에 대해 나는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다소 과대 평가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한국 소설은 단편, 중편집이 그나마 괜찮다. 비록 분량은 짧지만 한 권의 책 안에서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또 그 속에서 작가에 대한 이미지를 보다 쉽게 형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 일본작가의 소설은 내게 지금이 아닌 한 세대 이전의 일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의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작가의 기이한 삶 때문이리라. 작가는 5번의 시도 만에 의지대로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와 동반을 결심했던 두 명의 여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가 자살을 꿈꾸었던 것은 자신의 현실과 준거로서의 자신간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그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소심했던 듯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또 타인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얻는 것을 힘겨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여성 문제와 마약 등 타락적인 삶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집안으로부터 내침을 받았으며 그래서 집을 동경하며 살았다 한다.
소설 인간 실격은 이런 그의 삶을 두고 본다면 완전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책 속의 주인공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그들에게 자신을 숨기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으며 그 결과 일찍이 술과 여자의 세계에 빠져 타락하다가 결국 몇 차례의 시도 끝에 27세의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여인들과의 얽힌 인연, 정신 병원 감금의 충격도 그의 삶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소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 또한 부담이었던 듯 그는 사소설 형식을 빌리지 않고 한 소설가가 어느 특이한 사람의 일생에 관한 노트를 얻는다는 식의 액자 이야기를 앞뒤로 배치해 자신을 가리고 있다.
아무튼 이 중편 분량의 소설을 읽게 되면 1940년대, 그러니까 2차 대전 패전을 전후한 일본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다. 그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주인공의 불안과 몰락은 분명 그 시대의 불안을 상징하고 있다. 신뢰와 자기 자신, 사회에 대한 확신이 무너져가고 있는 당시의 일본이 그대로 느껴진다. 과거 유럽이 1차 대전에 즈음하여 데카당스, 퇴폐의 향연에 빠졌던 것처럼 1940년대 일본의 모습도 그랬던 모양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자살은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이라기 보다 시대적 타살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렇다고 그 자체가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주인공의 주변인적 삶과 불안한 인식은 2008년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갈수록 사회라는 틀이 개인을 억압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한다.
내가 만약 이 소설을 20대 초반에 읽었더라면 나는 아마 감동을 넘어 공감의 차원으로 열광했을 것이다. 고교 시절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대학 초년 시절 김승옥의 <무진 기행>에 열광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3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다자이 오사무가 마지막 자살을 감행한 나이에 이른 지금 이 소설을 나는 공감하기 전에 (칸트식의) 선험적 감성-어쩌면 경험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으로 내용을 범주화한다. 공감을 하지 못하면 적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식으로 눈을 찡그려야 하는데 그저 가능한 삶이다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30대의 삶, 그리고 그 감성이란 게 이런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한 시대의 일본 작가들에 큰 관심이 생겼다. 해방 전후 한국 작가들의 소설들에서는 이런 느낌의 소설은 없었던 듯하다. 더 고전적 느낌이 났던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시기 한국 중단편들을 살펴봐야겠다. 아울러 이 소설이 포함된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에도 관심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