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이 통합적 사유를 위해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눈 것을 정리한 책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학 때 물리학을 전공하여 한 사람은 계속 물리학으로 다른 한 사람은 철학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각 철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고 있었던 듯싶다. 특히 물리학자 장회익은 과학자를 넘어 철학적 사유가 참 대단하다. 그래서 대화는 철학자 최종덕이 과거 소크라테스처럼 장회익에게 질문하고 여기서 하나의 이야기 거리를 잡아 대화를 발전시키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무튼 두 사람의 대화는 일단 제대로 된 앎을 얻을 수 없는 현 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고전 역학과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그리고 장회익의 온생명 사상, 동양과 서양의 차이, 물질과 의식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 둘로 나뉘어진 사유 방식, 사유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그 통합의 시도가 명쾌하게 마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내게는 양자 역학을 고전 역학과 단절한 것으로 이해하고 불확정성에 커다란 의미를 두는 것이 오해일 수 있다는, 위치와 운동량이 아닌 상태를 기준으로 양자역학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혜강 최한기 등의 기철학과 서구 기계론과의 차이에 대한 대화, 의식을 물질이 지닌 또 다른 특성-여기서 물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보다 더 상위 개념이라 할 수 있다-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일단 통학적 사유에 대한 이애 이전에 개별 학문, 개별 개념에 대한 이해를 새로이 할 수 있었다.
한편 아인슈타인 본인도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즉 최초 발견자, 최초 이론가가 그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안다는 생각은 필요 없다는 생각도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이 생각은 결국 인간 사유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사유를 파악하고 가르치는데 있어 역사적 접근은 필요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이론과 사유가 혜안을 지닌 한 사람에 의해 제시되더라도 완성은 여러 사람을 거쳐 이루어짐을 생각하게 한다. 또 재즈를 놓고 볼 때 재즈의 진보에도 이러한 관점이 적용될 수 있다고도 본다.
결국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내릴 수 있는 통합의 방법은 미시적 차원에서의 차별성만큼이나 거시적 차원에서의 조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거시적 차원에서의 조망이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찾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대화에 등장하는 부채살론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최근 세상이 개인화, 파편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다른 학문과의 단절 혹은 파편화를 통해 자기 영역을 구축하려 하는 개별 학문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 같은 통합적 사유를 위한 논의는 적극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실 이런 책은 간간히 인상적인 구절을 공책에 필기해가며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나는 이를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다시 읽으며 공책에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