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선물이 아니었다면 나와 만날 확률이 그리 많지 않았던 책이다. 그런데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인데다가 많은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
추리 소설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뭐랄까 약간의 긴장을 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포일러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범인은 수학교사다! 하고 말이다. (놀라지 말라. 소설은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니까.) 이 소설은 자신이 사랑하는 모녀의 우발적 살인을 완전하게 은폐시키려는 천재 수학교사와 이를 의심한 그의 대학 시절 동기였던 천재 물리학자의 은밀한 대결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수학 천재가 등장하다 보니 내용 곳곳에 수학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소설의 복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로 문제를 만드는 일이 어려운가 아니면 그 문제의 해법을 검증하는 것이 더 어려운가(P≠p)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또한 수학교사가 문제를 출제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기하학 문제인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는 함수에 관한 문제를 내는 식의 방법 또한 추리의 복선을 형성한다.
이처럼 고전적인 형사들의 추적과 지능적인 추리가 어우러지며 내용이 진행되고 있기에 소설은 끝까지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담담한 문체도 한 몫 한다.) 그리고 독자를 그 세계에 가둔다. 사실 추리 소설이 성공하려면 추리 소설의 논리의 맹점을 독자가 생각하지 않도록 그 세계에 가두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함수문제인줄 모르고 기하학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작가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억지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사건의 진행을 조절하며 적절한 순간에 복선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뛰어남은 깜짝 놀라게 하는 추리기법에 있지 않다. 그 보다는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이 높은 완성도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 제목이 ‘위장살인’같은 좀 더 추리소설적인 제목이 아닌 ‘용의자 X의 헌신’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소설의 진행은 물론 충격적인 반전이 가능했고 또 그래서 수학자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고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뷰>를 떠올렸다. 분명 미친 사랑의 열정에 관한 부분에서 두 소설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