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재지이 5 – 포송령 (김혜경 역, 민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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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8대 기서(奇書)의 하나인 포송령의 <요재지이> 5권을 읽었다. 오래 전부터 읽겠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전 6권의 분량이 마음에 걸려 읽지 않고 있다가 이 책을 번역하신 김혜경 교수로부터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은 포송령이 썼다고 하나 그 내용을 그가 다 창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전반적인 내용들이 민담이나 전설의 모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야기들이 보통의 삶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귀신, 정령들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에서 포송령의 존재감이 느껴질 뿐이다. 알려졌다시피 80년대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영화 <천녀유혼>도 요재지이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귀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서술 자체가 자유롭고 생각보다 건조해서 공포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그 귀신들이 포악한 경우만큼 착한 것도 많아서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기이한 이야기들의 묶음으로 보이지만 이 책은 결국 이 책이 씌어진 청나라 초기 시절의 사회상을 엿보게 한다. 그 사회는 그런 경우만 골랐겠지만 관리의 부정부패가 흔한 사회로 그려진다. 그래서 귀신은 부패의 강조된 의미로, 때로는 인간의 부패가 귀신 혹은 괴물의 무서움보다 더하다는 식의 비교의 기준으로 등장한다. 물론 나쁜 일을 하면 벌받는다는 의미로도 등장한다. 이러한 교훈적인 성격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글쓴이의 해설적 참여, 그러니까 귀신이 나오는 일들을 직접 사회상에 비유하는 글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무릇 고전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요재지이>가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내용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거엔 귀신이 보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합리성과 비합리성, 무지몽매와 계몽의 차원에서 비교하면 안될 것 같았다.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귀신이 사라진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과거에 귀신이 보였던 것은 단죄하려는 절대자의 의지가 아니라 죄를 짓고 그 죄책감에 마음이 편치 않는 죄인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가벼운 죄에도 그들은 죄책감을 갖고 살지 않았을까? 그 죄책감이 공포감으로 이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괴물을 보고 싶어하고 그 괴물이 인간을 도륙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도륙의 대상이 나만 아니라면 말이다. 게임이나 영화가 그렇다. 이런 상황을 포송령이 보았다면 어땠을까? 그는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않았을까? 착한 일을 하면 얻게 되는 보상에 대해 쓰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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