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더 레코드 현대미술 – 정장진 (동녘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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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내 예술,문화 책들에 아쉬움이 많다. 아니 책보다 출판 경향에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 정확한 듯. 그것은 부담 없는 초보 중심의 비슷비슷한 책들이 많고 그 다음의 중간 애호가 수준의 책들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공자 수준의 책들은 그럭저럭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중간자를 위한 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술책들이 그렇다. 간단한 그림 소개나 일화소개에 머무르는 입문자용 책들이 너무 많다. 또한 소재 또한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다들 유사하다. 그래서 너 나아가는 독서를 어렵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에 대해서 뭐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은 더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그런 나의 바람에 이 책은 어느 정도 부합한다. 너무 진지하거나 어려운 방향의 서술이 아니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소재가 된 그림들이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본 것들이기에 뻔한 인상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건 나의 앎에서 조금이나마 더 나아간 무엇을 주었다.

저자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의 서술은 에피소드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미술계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에피소드는 하나의 출발점, 의미의 근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출발해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 화가의 경향 등으로 발전하면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제시해 나간다. 그렇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틀의 문제를 더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지식보다-그것도 꽤 나오지만-저자가 그림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가?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고 하겠다. 글의 소재가 그림 외에 화가, 특정 유파 등을 아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제가 ‘미술사가 정장진의 현대 미술 감상법’임을 상기하자. 책의 내용 가운데 내게는 ‘오르낭의 묘지에 고전주의를 묻은 귀스타브 쿠르베’, ‘자연을 증오했던 화가, 몬드리안’, ‘대중 조작의 총 연출가, 자크 루이 다비드’ 같은 글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전체 4개의 장 가운데 ‘제목 덕에 명작이 되다’ 장이 현대미술의 창작과 감상 차원에서 고민거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한편 장점 가운데 이 책만의 아쉬움도 있다. 먼저 제목이 현대미술이라 했지만 사실 이 책에 나온 화가나 그림들 대부분은 근대 미술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것도 저자가 종종 책 속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따르면 ‘완료’된 작품들이다. 다른 책들에서도 너무나도 많이 접했던, 그래서 진부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약간의 새로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소개된 크리스토 자바체프 같은 진정한 현대 미술을 소개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책의 독자층은 달라질 것이다. 더 전문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실제 이 책에서 근대 미술이 다루어진 것은 역시 책 자체가 입문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의 서술방식이 이를 뛰어넘으려 하기에 달리 보일 뿐. 그래도 내게는 아쉬움보다 만족이 큰 책이었다. 그림 이전에 정장진이라는 미술사가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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