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가난하다’. 예술에 대해 생각할 때 연상되는 대표적인 선입견 가운데 하나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비참한 예술가의 운명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이 말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현재 예술계를 보면 흔히 잘 나간다고 하는 화가들은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예술가는 가난하다’라는 생각은 여전히 큰 효력을 발휘한다. 나아가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한스 애빙은 네덜란드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화가이다. 소개를 보아하니 양쪽 모두에서 나름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소 이질적인 두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이 책의 주제를 두고 생각을 거듭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이 책은 예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먼저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을 애써 무시하려 하는 경향이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최소비용만 충족되면 경제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예술의 신성함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성함이 예술가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의 후원이 예술가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즉, 예술가에 후원을 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성공을 꿈꾸며 예술계로 편입되면서 평균 소득이 갈수록 낮아지는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생각한 이유다. 그래서 그는 후원이 오히려 줄어들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정말 그의 말대로라면 이 경우 예술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예술가의 평균 수입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평균 수입이 문제가 아니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독식현상에 있지 않을까? 책의 전반부가 가난의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면 나머지 후반부는 예술과 정부의 후원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언급한대로 후원이 오히려 줄어들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독식현상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정부가 지원을 해도 그 지원은 결코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받은 사람이 계속 지원을 받는 한편 많은 예술가가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중 현상은 예술 창작 자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나아가 예술이 정부 기관에 보이지 않게 종속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또한 정부가 예술에 지원을 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여건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입장료 할인보다는 세금을 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에 나는 일단 논리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예술을 시장경제의 논리에 두고 싶어하는 것일까? 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자연스러운 진입 규제로 인한 예술가의 평균 소득 증가가 있을 순 있지만 결국엔 예술의 질적 하락을 맛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중문화의 상업성에 대해 비판하듯이 순수하다고 평가 받는 예술도 상업논리에 젖어 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정부, 사회의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그 지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논리가 최소한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아마도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진입은 열려 있다지만 여러 가지 장애가 사실은 그 안에 있어서 독식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어려워도 해 야할 일이 있지 않은가?
한편 이 책에서 나는 예술에 대한 저자의 의미 탐구에 더 공감했다. 첫 두 장 정도가 특히 그런데 예술에 대한 작가와 감상자의 신화를 파헤치는 부분이 상당히 좋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 논지의 전개에서 볼 때 흐름이 다소 장황하다는 느낌도 든다. 13장의 흐름을 약 절반 정도로 축약해 전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