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 샤오루 궈 (변용란 역, 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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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특이해서 손이 간 소설이다. 위화를 읽어보긴 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중국 문학에는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 소설은 24세의 중국 여성이 영어 연수를 위해 런던에 가서 오해로 44세의 영국 남성을 만나 약 1년간 동거하면서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새로이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서술이 주인공의 일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Z는 베이징을 떠나면서 억지로 영어로 일기를 쓴다. 그래서 그녀 옆에는 늘 중영(中英)사전이 있다. 그 사전을 들추어가며 틀린 문법으로 쓴 일기가 서사를 형성한다. 그리고 각 장마다 그녀가 배운 새로운 단어 하나가 제시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녀의 사랑 이야기, 단상이 서술되어 전체 이야기는 있지만 그리 극적이지는 않은 느낌을 준다. 대신 남의 일상을 엿보는 느낌을 준다.

이 소설은 여러 층위에서 읽힐 수 있다. 먼저 남자에 귀속되어 내일을 꿈꾸고 싶어하는 여성과 자기 공간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사랑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엄격한 통치 속에서 자라난 동양 여성과 현재의 자유에 만족하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는 서양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이 두 관점을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튼 이 소설에는 두 문화의 충돌, 두 성의 충돌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충돌의 화두들은 모두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섹스’에 대한 남녀의 생각, 가족에 대한 생각, 음식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Z가 남자를 알게 되고 여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며 사랑의 아픔을 겪고 또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위하는 과정에 소설의 재미가 있다. 그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가 부각되고 그것이 그녀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연애가 가능한 것은 사실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동양 남자와 서양 여성의 연애는 이상하게도 쉽지 않다. 서양 여성들이 동양 남성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렇다. 동양 여성과 서양 남성의 연애이기에 일주일 만에 함께 살 수 있는 상황이 나왔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확실히 현지인과 사랑을 하고 함께 살면 외국어 실력이 금방 향상됨을 새삼 느낀다. 이 소설의 시작은 ‘Sorry Of My English’다. 그리고 단어를 잘 못 이해하고, 철자와 문법을 틀리게 쓴 일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는 일년 사이 눈부시게 향상된 영어 작문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주인공 Z가 영어를 익히는 정도에 따라 사랑이 비례하는 그래서 결국 덤덤하게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소설을 읽어도 될 법 하다.

이 소설의 작가 샤오루 궈는 현재 소설 외에 영화 감독으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영화를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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