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이 쓴 이 책의 원제는 ‘역사의 이용과 악용’이다. 번역본에서는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라는 부제로 등장한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지나간 일들의 총집합, 사실들의 객관적 종합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건은 있었지만 그것이 역사로 옮겨지면서 하나의 관점이 투영되고 그로 인해 단순 사실의 집합이라는 이상적인 생각은 와해되기 쉽다. 저자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역사가 인간의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방식 가운데 소수의 정치가, 집단, 그리고 국가가 역사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이해(오판)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악용함을 드러낸다. 그것을 저자는 멀리에서 찾지 않고 양차 세계 대전, 미국의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발칸반도 문제 등 20세기와 21세기에서 찾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일본은 2차대전 후 원폭 피해를 강조하여 자신들을 피해자로 바꾸어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스탈린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트로츠키를 모든 기록에서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조지 W. 부시가 자신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비교하며 자신의 행위를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은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했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기록된 역사는 그 자체로 불변의 정설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저자 역시 역사에 있어 하나의 단순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란 없음을, 따라서 역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명될 수 있음을 말한다. 사람의 내면이 복잡한 만큼 하나의 역사는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이로울 수도 있으며 해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인식하고 보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이를 선용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이것이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어라.’ 맺음말에 나와 있는 저자의 말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최근 우리 교육이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한 일이 생각났다. 역사는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 특히 국가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서 작용하며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는 위험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역사는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역사가 시험 편의를 위한 선택과목이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과연 독도문제나 일본의 위안부 보상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역사 없는 가벼운 국가가 되려고 하는 것인지.
한편 저자가 예로 든 사건 가운데 중국,대만,일본,베트남 등과 함께 한국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부분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확실히 외국인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객관적으로 전쟁을 바라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