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 롤프 귄터 레너 (정재곤 역, 마로니에 북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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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빈 방의 빛>에 자극 받아 호퍼에 관한 책을 하나 더 읽었다.(보았다?) 프랑스 타쉔 출판사의 유명한-인기 있는 화가 시리즈를 번역한 책이다. <빈 방의 빛>보다 그림 수도 많고 서술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하고 있어서 보다 전문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비교하자만 <빈 방의 빛>이 그림을 감상하기엔 더 편하다. 이 책은 편집이 원래 그런 것인지 페이지를 오가며 설명과 그림을 맞춰봐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 책이 구분하는 몇 가지 주제는 어느 정도 호퍼의 삶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즉, 파리에서의 초기 시절부터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요에 따라 그림들을 시간과 상관 없이 비교하기도 하고 시대의 비슷한 작가들의 그림과도 비교하기도 한다. 즉, 나름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호퍼의 그림을 현실을 그린 듯하면서도 사실은 호퍼의 마음에서 재 구성되고 그래서 감추어진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판단한다. 모순이지만 상징적 리얼리즘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호퍼의 그림에는 자연과 문명의 대립 또 그 사이에서 인간의 고립 등이 투영되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외로운 인간이라는 감상적인 부분은 배제한 듯하다. 이런 저자의 관점에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몇 가지는 동의하기 곤란한데 특히 여성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저자는 호퍼의 그림에서 성적인 욕망을 발견하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그것마저 사그라든 인상을 받는다. 저자의 설명처럼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여성들-대부분은 화가의 아내인-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경우에 따라 육감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옷을 벗고 있을 수록 그 육체는 빛나지 않는다. 호퍼 특유의 찬란한 빛 아래서도 여성들의 육체는 지치고 건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이 여성들의 모습에서 색 바랜 즐거움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을 느낀다. 성적인 환상-역자는 팬태즘으로 옮겼는데 팡타즘이라면 모를까 이것은 좀 아니라 생각된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어떤 분야건 전체를 조망하는 글을 쓰게 되면 여러 작품들을 비교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경우 그 비교까지는 좋은데 해석의 비약이 좀 심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글쎄. 미술 분석에 능통한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관점을 위해 그림을 살짝 종속 시킨 느낌이 있다. 물론 그 또한 가능한 생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가능한 해석 가운데 저자의 해석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그림을 보는 시선을 따르다 보면 아! 그림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라는 것을 배울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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