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나는 이 책을 소설이라 생각했다. <리스본 행 야간열차>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행기-저자의 말에 따르면 여행기 같지 않은-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자는 기차 여행, 그것도 야간 열차 여행을 즐겼고 그것을 마음 먹고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가 나오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권유하는 열차 여행은 유라시아 대륙 열차 여행이다. 파리에서 출발한 저자는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되던 베를린까지 가기도 하며, 프라하에 도착해 카프카의 흔적을 발견하고 상념에 젖기도 하며, 화약 냄새 가득한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의 발칸 반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사라예보와 모스크바로, 그리고 몽골 횡단 열차로 몽골과 북경을 여행한다. 이렇게 저자가 여행한 곳들은 대부분 관광과는 거리가 있는, 시대의 상처가 있거나,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곳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소에 대해 저자는 연민의 시선을 보내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 여행자의 시선을 넘지 않는다. 여러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데서 오는 어지러움, 불안, 그리고 여기서 자연스레 발생한 상념을 드러내는데 치중한다. 저자가 이 책을 여행기 같지 않은 여행기라 한 것도 이 때문이리라.
저자가 야간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여행 자체의 과정, 여정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가는 느낌, 다소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시간을 겪고 난 후 도착이 갖는 즐거움을 야간 기차 여행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이동의 느낌은 느리더라도 오랜 시간 기차를 탔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왜 하필 야간 열차 여행일까? 그것은 낮 기차는 이미 빠른 속도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능한 벗어나려는 듯 단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낮의 기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독자에게 개인적인 야간 열차 여행을 추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야간 열차 여행을 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로마에서 파리까지의 야간 열차 여행, 좁은 객실에서 처음 만난 낯선 승객들과 튀니지 독립 당시의 상황에 대한 토론을 나누었던-주로 나는 듣는 쪽이었지만-파리-몽펠리에 기차여행, 그리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룩셈부르그, 스트라스부르그를 거쳐 디종까지 이어졌던 밤 기차 여행,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까지의 기차 여행, 그리고 대학 초년 시절 자주 이용했던 청량리-강릉의 야간 열차 여행 등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당시 야간 열차는 급행이 없었음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야간 열차는 이동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할 필요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서울-부산이 두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며 완행 열차가 거의 사라진 한국에서는 이러한 야간 열차 여행은 먼 이야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즉, 야간 열차의 낭만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야간 열차 여행의 낭만을 누리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저자가 가장 정성을 들여 썼다고 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보고 싶다. 약 5일에 걸친 그 기차 여행이 힘들겠지만 그 혼란스러운 시간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파리에서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북한을 경유해 서울까지 기차로 오려면 최소 37일인가가 걸린다-그 사이 수십 번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