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다쉴 해미트, 로스 맥도널드 등과 함께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을 대표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이다. 사실 추리 소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평소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다쉴 해미트의 <피의 수확>을 읽으며 추리 소설의 색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추리 소설적인 면에서 본다면 나는 그다지 그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보통의 추리 소설이 사건이 발생하고 또 다른 사건이 있어 그 상관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교묘히 결합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탐정이 이를 풀어나가는 식이 하나의 법칙을 이루고 있다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 소설은 그런 부분에 있어 다소 흡입력이 약하다. 결말 부분에 가서 주인공이 대화로 사건의 이음새를 해결하기 전까지 그 상관 관계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꼬여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부분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일단 큰 사건 두 개가 있는데 그 둘이 연결되는 순간이 어떤 영감 정도로만 처리되었다. 그리고 이후 인물을 찾게 되는 과정, 만남 등도 영감과 우연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을 다소 얽히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수적인 사건들 몇이 전체 사건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그저 본 사건과 관계 없었다는 식의 서술로 마무리 되어 아쉽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하고 그를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거장으로 평가하는 데는 이런 추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문체적인 특징에 있는 듯하다. 다소 의외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의 담담한 문체-하드보일드!-와 기막힌 수사를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 하루키나 폴 오스터 등을 그의 후예로 언급하곤 한다. 나 역시 다른 추리 소설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문체가 다른 격을 지녔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문체 자체가 아니라 그 문체가 추리적 내용에 녹아 드는 그 과정에 있다. 사실 하드보일드 문학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과도한 수사보다는 짧고 간략한 문장의 연속이 특징이다. 그럼 면에서 ‘마치~같은’이 난무하는 챈들러의 문장들을 하드보일드적인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챈들러는 이러한 비유문들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다소 냉소적인 유머를 남발하는-과 감정을 은근히 드러낸다. 한편 도시에 대해 대물렌즈를 들이 댄 듯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다소 통속적이다 싶을 정도로 장황한 면이 있지만 그 도시에 대한 묘사를 통해 챈들러는 비정한 도시, 사건이 은밀히 감추어진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설의 리듬의 완급을 조절한다. 아! 그렇다고 챈들러가 어떤 고상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보지는 않는다. 추리소설 하면 떠오르는 그런 분위기는 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아무튼 읽은 동안 내용 진행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소설을 읽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