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의 단편 소설집을 읽다. 그냥 이름이 낯선 소설가여서 마침 한국 소설을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다. 읽고 나니 잘 선택했다는 생각.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노레 드 발 자크의 <인간희극>을 생각했다. 총서로 기획된 이 작품은 여러 소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그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소설들이 하나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점에서는 <인간희극>에 견줄만하다. 한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갖게 되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생각 이상으로 각 소설의 연결점은 무척이나 강하다.
그렇다면 어떤 세상일까?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들의 세상이다. 8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버림 받거나 학대를 받아 집에서 나왔거나 아예 기억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을 잃고 헤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이 떠나온 가정, 잃어버린 가정을 그리워하는 대신 새로운 인간 관계에서 가족의 맛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온전히 성공하지 못한다.
사실 이러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다소 비정상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다소 환상적으로 그림으로서 그 비정상적인 느낌을 상쇄한다. 예를 들면 ‘양장 제본서 전기’에서 합법적으로 사라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서비스라는 가공의 장치를 사용하는 것, ‘폐쇄되는 도시’에서 도시를 재개발한다는 이유로 모든 주민을 도시 밖으로 떠나게 하는 상황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장치들은 소설에 환상성을 부여하면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심리적인 부분들을 이해하게 도와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환상성으로 인해 가족의 붕괴, 고독의 감정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 일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환상성이 소설을 소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는 소설. 꿈을 현실화하는 소설가의 능력을 확인하게 한다고 할까? 사실 나는 소설들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가 소설 속의 가족에게 버림 받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후기에 가족에 대한 감사를 적은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안심했다. 글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떠나서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되지만 적어도 정소현이란 소설가는 그런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앞으로는 보다 기분 좋은 상상을 작가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