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란 말은 아인슈타인이 불확정성의 원리로 대변되는 양자 역학의 확률적인 특성에 대해 수용 거부 의사를 밝히며 한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적인 능력으로 현대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세계가 우연, 우발성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의 계획을 따른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A. 시앙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찬성하며 양자역학에 대해 확고한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그가 펼치는 주요 논리는 우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것처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 의지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며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해서 우리 삶이 답답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양자역학, 진화론 등에 대해 검증할 수 없는 가설에 입각한 이론들이고 따라서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현대 과학의 확률 중심 사고 또한 통렬히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주사위를 던져서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 아니라는 것이다. 1이 나왔다면 1이 나올 확률이 100%였다는 것이다. 다른 숫자가 나올 확률은 없었다는 것. 이리 보면 터무니 없는 주장처럼 들리는데 그의 논리를 따르면 이미 발생한 사건은 그리 발생할 이유가 있었기에 발생한 것이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수백, 수천 번 주사위를 던져 나온 결과를 종합하면 모든 숫자가 6분의 1의 비율로 나오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커다란 차원, 무수한 반복 실험의 전체적인 결과일 뿐 개별 사건의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철저하게 미시적인, 개인적인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아무리 번개를 맞을 확률이 수천 분의 1이라 해도 내가 맞으면 그 순간 내가 번개 맞을 확률이 100%가 되지 않던가? 그러나 이것은 결과론적인 생각일 뿐이다. 시간을 뒤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일 뿐이다.
나는 저자의 생각, 특히 과학의 가설 중심의 흐름에 대한 비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의 생각을 수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현 과학적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교묘하게 자신에 반대할 독자를 무지한 쪽으로 내몬다.) 내가 보기에 그의 사고는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기초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확률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발생한 후에는 그 확률 분포가 완전히 바뀌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는 인간이 개입될 수도 있지만 그냥 우연-이것을 운명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논리는 현대 과학을 잘 이해한 후에 철학적 적용과정에서 반대로 아닌 다소 모호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신이 있다면 세상에 악은 왜 있을까라는 무신론자들의 의문에 이렇게 말한다. 설계자 혹은 신이 꼭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신이 선악이 공존하게 설계할 수도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신이 주사위를 던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