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예술 – 아미르 D. 악젤 (이충호 역, 알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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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수학과 예술의 상관 관계-예를 들면 원근법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관계 같은 -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누구라도 실망할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번역자의 잘못도 아닌 듯 하다. 원 제목도 ‘예술가와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차 대전 이후 결성된 프랑스 수학자들의 은밀한-그러나 결국 공개적이 되어버린-연구 단체 니콜라 부르바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서 수학적 재능을 드러냈던 프랑스의 수학자들이 당시 엄밀하지 못했던 낡은 수학을 타파하고 집합론을 중심으로 보다 엄밀하고 과학적인 수학과 그 연구 체계를 확립하려는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니콜라 부르바키였다. 그런데 이 단체는 재미있게도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공동 논문 등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가상의 존재에 폴데비아라는 국적, 출생 증명 등을 부여해 니콜라 부르바키-이 이름은 실존했던 프랑스 장군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가 마치 실제 살아 있는 개인인 것처럼 사람들이 여기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난은 어느 정도 통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저자는 니콜라 부르바키를 만든 사람들의 이력-전쟁과 관련된 그들의 삶은 상당히 극적이다-부터 출발해 부르바키의 활동, 그리고 몰락한 현재를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부르바키의 탄생과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가 하고픈 말은 부르바키가 구조주의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구조주의 사유의 기저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공교롭게도 100세의 나이로 어제 세상을 떠났다-가 친족의 구조를 연구하며 친했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방법론을 적용시키려 하면서 조사한 자료의 복잡함에 어려워하고 있을 때 당시 부르바키의 회장인 앙드레 베유가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후 저자의 서술은 다소 모호하다. 니콜라 부르바키가 심리학, 언어학, 문학, 철학 등 구조주의 사유 전반에 영향을 준 것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각 분야에 대한 설명에서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학자들이 수학적으로 생각한 것이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구조주의는 그 자체로 과학적이고 엄밀한 사유태도를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꼭 부르바키의 영향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나 생각된다. 또한 앙드레 베유가 레비 스트로스에게 도움을 준 것도 개인적인 것이지 부르바키의 도움은 아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만약 부르바키가 구조주의 사유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 부르바키가 얼마나 구조주의적이었나를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내용을 피하고 싶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선언적인 서술 이상을 나아가고 있지 않다. 한편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부르바키의 구조주의적인 면은 그들 스스로도 몰랐을 지도 모르겠는데 하나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내용을 고치고 또 고치며 완성본을 내놓는 집단적인 제작 방식에 있었다고 본다. 그러니까 구조가 먼저 있고 그 안에서 주체가 탄생되는 구조주의 사유의 핵심을 그대로 실현했던 것이다.

한편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의 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것을 이어간다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부르바키와 구조주의’라 붙이고 싶다.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내용을 생각하게 하는 데는 적합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부르바키가 구조주의 전반에 영향을 주었건 아니건 비교적 세심하게 다양한 분야의 구조주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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