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시를 좋아한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을 사랑한다. 파리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관련된 책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내가 원하는 서울에 관한 책은 1960,70년대의 서울 풍경을 여행자적 시선으로 간단하게 스케치한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시선도 좋지만 일단 사라지는 것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역시 내용은 다르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던 것은 서울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접근, 그리고 부제처럼 인문학적 시선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특별한 시선이 아니라 도시에 대한 보편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후에 개별적 관점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신뢰를 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28개의 주제를 통해 조선시대에 서울이 수도가 된 이후 여러 변화를 역사적 그리고 현대적 맥락에서 차근차근 되짚어 나간다. 그래서 ‘땅거지’, ‘무뢰배’, ‘남주북병 南酒北餠’, ‘종로, 전차’, ‘복덕방’ 등 다양한 시간의 이력을 담은 주제들이 차근차근 서술되어 있는데 이를 읽다 보면 정말 서울은 깊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기의 서울 풍경에 상당히 많은 시선을 두고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 말기 서울 그리고 한국 사회가 그냥 무기력하게 일본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 시기에 어떻게 서구 문명이 우리에게 들어왔으며 이것이 단순한 문명의 수입이 아니라 한국식 의미를 부여 받아 도입되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내는 서울의 깊이는 도시의 구조, 사회 구조가 허투루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 독자적 의미를 지니고 계획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탈색되어 버린 현재의 서울에 저자가 강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아쉬움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는 도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또 그래서 여전히 서울을 사랑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