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왜 읽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면 대부분 책 제목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제목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에 담긴 27편의 소설들은 모두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극적이거나 중요한 무엇을 담고 있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랑의 한 순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어떤 거대한 결말이 뒤따르지만 사실은 그냥 그 자체로 지나가는 소소한 떨림 같은 사건들의 순간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해, 의사소통의 단절, 이별, 엇갈림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모든 단편들이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담담하다. 그것이 독자를 사색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살짝 마음이 떨리게 만든다.
게다가 막심 빌러의 문체가 마음에 든다. 몇 군데 번역상의 어색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한글로 드러난 그의 문체는 참으로 담백하다. 단문 중심으로 등장인물에 그다지 큰 애정을 지니지 않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그 마음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문체 자체가 극적인 느낌을 준다. 사실 이런 문체가 내게 이 책을 올 해의 인상적인 책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담백한 문체와 달리 단편들의 제목은 그 자체로 황홀한 상상을 유발하는 것이 많다. ’80센티미터의 나쁜 기분’, ‘우리는 치보 마토에 앉아 있었다’, ‘접착 테이프로 붙인 해피엔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한편 이 짧은 단편들을 읽으며 나는 같은 독일 소설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단편들을 떠올렸다. 물론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2차대전 당시의 불안한 심리적 상황을 묘사했던 반면 막심 빌러는 자신의 태생-1960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10세때부터 독일에서 살고 있음-과 상관 없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긴 하다. (물론 그의 단편에도 유대인들이 자주 등장하고 그들의 문화를 드러내긴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랑이 그의 단편들의 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와도 같은 담담한 문체는 두 소설가를 비교하게 만든다.
그냥 두고 마음이 다소 허할 때 한 편씩 곱씹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