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일에 걸쳐 출, 퇴근 시간 그리고 (조금 긴) 점심 시간을 이용해 빌리 할리데이의 전기를 다 읽었다.
빌리 할리데이의 드라마틱한 삶은 이미 세상에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이 전기도 그것을 조금 더 세밀하게 밝히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세밀하게 밝히면서 결국 빌리 할리데이의 비극은 흑인에다가 버림 받았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적인 부분도 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여기에는 어릴 적 환경이 그녀의 성향을 그리 만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폭력적인 남성, 마약과 술에 의존했다는 것은 안타깝다.
한편 이 책은 빌리 할리데이가 기본적으로 매력 있고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제외하고 그녀의 삶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것은 흑백차별이 존재하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실제 평생 돈을 만져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처럼 비추어지는 그녀의 삶에 대한 막연한 세간의 인식과 달리 그녀는 저축은 하지 못했어도 돈으로 괴로웠던 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음악적인 측면을 본다면 그녀의 노래는 천부적 재능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음악 교육, 연습이 없이도 술 한 잔 마시고 노래하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니 이를 천부적 재능 이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그녀의 노래가 하나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었기에 지금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한편 이 책은 빌리 할리데이 외의 그녀를 둘러싼 재즈계의 상황을 비교적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어 꼭 빌리 할리데이가 아니라 뉴 올리언즈, 스윙 시대의 재즈 환경을 이해하고픈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리라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 그녀가 디바로 추앙 받지만 당시에는 제한된 지역에서만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미국의 인종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지난 2004년에 발간된 <Wishing On The Moon>을 번역한 것이다. 10여군데 이해가 잘 되지않는 번역이 있지만 750페이지에서 그 정도면 잘 한 번역이라 본다. 그러나 원저자의 서술방식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그것은 도널드 클라크가 저자라기 보다 다양한 자료의 단순 정리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그가 정리를 더 해서 연대기를 따라 소설적으로 전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나도 많은 인터뷰 자료가 그대로 인용이 되다 보니 전개가 다소 어지럽다. 그리고 그 인터뷰 대상에 대한 소개도 살짝 불친절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인터뷰 등장인물이 누구고 또 그가 빌리 할리데이와 어떤 관계인지 헛갈리는 순간이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책의 중반부까지 빌리 할리데이는 마치 하나의 그림자처럼 다루어진다. 분명 출생하고 강간을 당하고 교도소를 가는 그녀가 있는데 이것이 먼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희미하게 제시되니 그녀의 비극적 삶에 대한 독자의 공감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힘든 부분을 감추려 했거나 아예 자료 자체가 부족했는지 몰라도 서술이 다소 모호하다.
한편 분명 빌리 할리데이의 음악은 거장다웠지만 그녀의 삶은 그러하지 못했으니 과연 그녀의 전기가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에 들어갈만한 것일까? 생각되기도 한다. 천부적 재능을 지녔고 그것으로 사람을 감동시켰지만 현실은 나쁜 것의 총체로서의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빌리 할리데이에 대한 환상이 다소 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빌리 할리데이가 자신의 처절한 삶과 시대상황을 의식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래했다고는 보기 힘들지만…그래도 너무나 절묘하게 잘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드네요.
거장이나 위인은 일어난 사실의 나열로 정의되기 보다 사람들의 상상적 반응에 의해 구성되는 걸 빌리 할리데이가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반영이라기보다 수동적이라 할까요? 그냥 삶과 시대가 부여했던 무게, 질곡을 그대로 흡수한 목소리라 생각합니다. 빌리 할리데이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셨는지…
흠…한 개인의 재능에 대한 평가와 삶에 대한 평가…그것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빌리 할리데이는 삶과 음악이 거의 같이 갔던 것 같습니다. 시대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목소리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