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떠도는 그림자들>을 읽고 신경을 껐다가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된 파스칼 키냐르. 은둔자적인 그의 삶과 잠언에 가까운 문장들만 기억나서 나는 그를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아침>의 저자가 아니던가? 그의 대중성을 나는 이번 <빌라 아말리아>를 읽으며 알았다. 그냥 차분한 글만 쓸 줄 알았는데 마음을 졸이게 하고 감탄하게 하는 그루브를 능숙하게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도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따로 보고 싶어진다.
소설은 동거남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작곡가겸 피아노 연주자인 안이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리 말하면 무슨 여인의 자아 찾기식의 흔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보다는 자신이 마음 놓고 자신으로만 살 수 있는 공간 찾기라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리 보면 또 작가가 생각보다 이야기의 전개를 다소 흐리게 가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 빌라 아말리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 시간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그 전에 여러 도시를 돌며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 그 과정에서 호텔을 전전하게 되는 과정이 있으니, 그리고 마지막에는 테이의 오두막집에 정착하게 되니 그럴 수 있다. 게다가 후반에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은 색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독서를 어지럽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여인의 새로운 삶 찾기는 신분 세탁과 낯선 공간에서의 안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소설의 의도를 모호하게 한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그의 친구 조르주, 어린 소녀 마그달레나, 빌라의 주인 아말리아 등의 죽음 끝에 그녀는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소설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겠다. 내가 잘 못 읽지 않았나 의심도 한편으로 한다. 분명한 것은 기막히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안의 현재 지우기 부분과 그 이후가 리듬이나 전개 방향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비하지만 그만큼 파악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아니 제목을 <빌라 아말리아>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달랐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이자벨 위베르가 주연했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