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 – 마크 스트랜드 (박상미 역, 한길 아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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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는 아니지만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의 (유명한) 그림 전반에 흐르는 여백과 그 안에 담긴 긴장이 나는 맘에 든다. 사실 그의 여백은 빛을 더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편의 측면이 강하지만. (그러고 보니 나는 빛을 효과적으로 처리한 화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미국의 계관 시인 마크 스트랜드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는 호퍼의 그림 30장을 보며 그가 생각하는 호퍼를 담담히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호퍼의 그림을 보며 말하는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 같은 감상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는 구도를 보며 그림 밖의 연장된 공간을 상상하고 호퍼의 그림이 사실적인 풍경이 아니라 호퍼의 정신 속 세계의 반영임을 읽어낸다.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이것은 언어적 한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대체적으로 나는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그림 안에 너무 많이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세상을 떠난 큐레이터 캐서린 쿠가 호퍼의 그림에 대해 말한 것을 빌리면 그는 ‘외로움 Loneliness’이 아니라 ‘홀로 있음 Solitude’를 그린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호퍼의 심리이고 감상자는 그의 그림에서 외로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왜냐하면 감상자로서 나는 그 홀로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 등으로 대변되는 자연과 대립하는 도시에 살면서 그 도시 안에서 나갈 수 없는 그림 속 인물들을 보면 생각보다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그 홀로 있음을 잘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나는 그 공간에 흐르는 비현실성에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한편 이 책은 호퍼의 그림에 거리가 한적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평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도시에서 사람을 줄이고 그 공간 구석구석에 빛을 비추면서 호퍼는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늘 보는 듯한 평범한 풍경들이 과거와 현재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나아가 시간성을 상실한 새로운 차원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그의 회화세계의 완성이라 평가 받는 작품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빈 방의 빛’-책 표지의 그림-인 것도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충만-어쩌면 빛-을 마지막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확실히 이 그림은 감상자를 외롭게 하지 않는다. 호퍼가 의도했을 ‘홀로 있음’의 충만을 느끼게 해준다. (생각해 보니 호퍼는 자기 아내와 함께 명성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잘 드는 빌딩의 높은 층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주요하지만 거기서 자신만의 생각을 진행할 단초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모처럼 호퍼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서 좋았다. 한편 이 책은 원래 흑백으로 호퍼의 그림이 실렸던 문고판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국내 번역판에서는 올 컬러에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편집으로 바꾸어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역자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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