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라베스크: 한 점의 그림으로 시작된 영혼의 여행 – 파트리샤 햄플 (정은지 역, 아트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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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 파트리샤 햄플이 쓴 미술(혹은 예술)에 관한 사색적 에세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이기 때문이 그런 것이고 내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에세이를 위해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사실 원래 에세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에세이가 맞다. 아무튼 이런 깊이의 에세이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에세이는 ‘독방-창-디반-카메라오브스쿠라-터키 욕장-발코니-예배당’ 등의 공간 혹은 사물을 제목으로 챕터를 나누고 있지만 크게 이 책은 화가 앙리 마티스를 중심으로 스콧 피츠제럴드, 제롬 힐, 캐서린 맨스필드 등 저자를 사로잡은 예술가들을 자연스럽게 조망하고 다시 마티스의 세계로 돌아오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따라 서술되면서 이들 작가들은 서로 중첩되고 배제되면서 하나로 묶인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서술의 시작은 저자가 우연히 마티스의 그림 <어항 앞의 여인>을 보게 되면서였다. 책 표지에 일부분이 사용된 이 그림을 보면서 저자는 여인의 사색하는 시선과 그 뒤의 아라베스크 무늬에 매혹되었다. 그러면서 마티스의 오달리스크 그림들을 찾아가며 거기서 색과 빛으로 이루어진 마티스의 미학을 체험하고 그가 머물렀던 남프랑스의 카시스 지역을 매개로 그녀의 이웃에 살면서 카시스에 별장을 두었던 영화 감독 제롬 힐, 역시 남 프랑스에 매혹되었던 캐서린 맨스필드의 자취를 쫓는다. 저자 역시 남 프랑스를 여행하고 머물렀음은 물론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모더니티의 특성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힐끗 보기,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를 그린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저자의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2차적인 의미를 생산한다. 그것이 이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알려진 마티스의 그림에 대한 것과 확연히 다른 무엇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의 경험이 어우러져 그 셋의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공감이 가능한 글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나 또한 그런 시선과 감상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을 보고 싶다, 책을 읽고 싶다는 것과는 다른 욕구. 저자에 대한 공감과 동경 말이다. 물론 나는 모처럼 마티스의 Taschen 화집-간단한 전기가 곁들인-과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을 찾았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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