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의 소설집이다. 프랑스어 판은 10편으로 구성되었다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국내 판에는 5편이 실렸다. 뭐 단편집이니 이것은 상관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표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실렸으니……
마르셀 에메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것이 재미있다. 그럴싸한 상상력으로 그는 현실을 살짝 뒤틀어 동화 같은 세계를 풍자적 혹은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예를 들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경우 실제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가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상 탈출에 관한 공상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벽에 갇히는 것으로 끝내 그 상상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하지만 독서 이후 바라보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환상적 긴장을 꿈꾸게 한다. 즉, 동화적 세계를 그리는가 싶더니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환상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내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작가의 매력이 아닐는지.
한편 영화화 되기도 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재미있지만 내게는 모든 것이 물화된 현대 세계에 대한 조소가 느껴지는 ‘생존 시간 카드’와 빈부가 새로운 계급을 만들고 그것을 고착시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칠십 리 장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이 두 단편은 환상적 분위기를 견지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기에 우화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칠십 리 장화’는 그 환상적 결말이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가슴을 툭 건드려 깊은 파장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인지 이 책 표지가 ‘칠십 리 장화’의 삽화를 사용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