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조금씩 앙리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읽고 있다. 그런데 양도 많지만 생물학에 근거를 둔 그의 철학을 따라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주석서를 찾는 대신 이 만화를 선택했다. 서울대가 정했다는 인문 교양서 100권 가운데 50권을 만화로 만들었다는 시리즈에 포함된 이 책은 만화이지만 베르그송의 철학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화지만 그 대상을 성인에 맞춘 내용이기에 마냥 액기스 중심은 아니다. 베르그송이 원서에서 사용하는 여러 생물학적 예, 분석 등을 그대로 그림으로 보여준다. 물론 만화의 진행이 다소 비약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만화를 보고 <창조적 진화>를 읽어 나간다면 이해가 한층 수월해질 것임에는 틀림 없다.
아무튼 이 만화를 통해 드러나는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는’ 흔히 알려진 대로 엘랑 비탈(Elan Vital)이라 불리는 삶의 약동이 우리를 미지와 우연의 삶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약동에는 과거로 축적된 의식의 지속이 필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직관의 역할-지성과 반대쪽에 선-이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이 내적 충동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주체 중심적인 관점에서 자유를 생각하는 듯하여 그 미래가 다소 불확실하다는 의문도 있다. (이런 점들이 러셀의 비판을 가져온 것일까?) 그러나 이런 약동이 들뢰즈의 생성 철학-다만 그는 주체를 소멸시켰다-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정신과 육체로 나뉘어진 이원론적인 생각을 어느 정도 하나로 합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만화를 보며 새삼 들었던 생각은 베르그송이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그의 새로운 철학을 개진하기 위해서였지만 당대의 흐름이 다윈의 잔화론과 뉴턴의 역학으로 인해 결정론-라플라스!-적인 생각이 극에 달한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기계론과 목적론에 대한 문제를 개진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했을 것이다. 또 그렇기에 그의 철학이 ‘생철학’으로 불리기도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막연히 인간적인 가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엄정한 과학적 방법을 통한 성찰로 인간적 가치가 아닌 안간이 나아가야 할 길,삶을 제시했다고 본다. 아무튼 번역서 읽기를 어서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