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코넬 울리치 (이 은경역, 이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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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스탠더드 곡 가운데에는 ‘Night Has A Thousand Eyes’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동명의 1948년도 영화의 주제 음악이기도 한데 그 영화는 바로 코넬 울리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내게 코넬 울리치는 <상복의 랑데뷰>로 기억되고 있다. 1989년에 읽었던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면서도 미친 사랑의 노래라 부를 정도로 안타까운 멜로 소설이었다. 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 뒤 21년 만에 두 번째로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읽고 나서 역시 그는 다른 추리 소설가들과는 다른 우아함을 지닌 작가임을 깨달았다. 보통 레이먼 챈들러를 추리 소설작가들 중에 문체가 좋은 작가로 평가하고 있는데 코넬 울리치는 글쓰기 방식 자체가 보다 문학적이다. 사무엘 다쉴 해미트, 레이먼 챈들러 등 추리 소설의 대표 거장으로 뽑히는 작가들이 서사의 전개 자체에 집중했다면 코넬 울리치는 세부적인 심리의 문학적 묘사에 더 집중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묘사는 단순한 직유가 아니라 시를 쓰는 듯한 아름다운 은유와 상징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의 내용은 사실 추리 소설로 보면 그렇게 명쾌하지 않다. 전개에 있어 몇 부분은 미처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불완전한 면도 있다. 그러나 죽음의 운명에 대한 불안을 이토록 잘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용의 핵심을 상당히 훌륭하게 파고들었다. 작가의 깊이 있는 문체적 특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하드 보일드하지도 않으며 추리 소설적이지도 않다. (나 같은 경우 예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무렵 어떻게 죽음이 승리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다만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의 서스펜스, 스릴이 있을 뿐이다. 이런 부분이 그를 다른 작가들과 구분하게 하지 않나 생각된다.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코넬 울리치를 좋아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그는 코넬 울리치의 <Real Window>를 영화로 만들었다.

코넬 울리치는 본명 외에 윌리엄 아이리시, 조지 호플리란 이름으로도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소설도 원래 1945년 조지 호플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한다. 죽음의 운명에 대해 일찌감치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런 그의 삶이 어느 정도 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번역자가 쓴 해설에 보면 이 소설이 1984년에 영화화 되었다고 나와 있는데 1984년에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Clock & Dagger>라는 영화로 코넬 울리치의 <The Boy Cried Murder>를 원작으로 한 영화 <The Window>의 리메이크 영화였다. 하지만 번역자가 이를 혼동했기 보다는 1948을 1984로 잘 못 썼다고 생각된다. 번역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전반적으로 이 책의 번역에 불만은 없다. 그러나 간간히 코넬 울리치의 문학적 표현이 직역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초반에 여 주인공이 불안을 잊지 위해 프랑스어 책을 읽는 장면이 있는데 그 책의 내용을 그냥 프랑스어로 두었다. 그런데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코>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어 문장들은 죽음의 운명에 대한 것이기에 번역을 해야 했다고 본다.

PS: 재즈 스탠더드 곡 ‘Night Has A Thousand Eyes’는 상당히 낭만적인 곡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별들의 낭만성을 생각하게 하는 연주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무지 그 분위기가 연결되지 않았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 나왔을까?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 나왔을 확률이 크다고 보이지만….한번 보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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