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역사 – 마크 마조워 (이순호 역, 을유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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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의 음악은 유랑자적인 슬픔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발칸 반도 쪽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네들이 왜 그런 정서를 지니게 되었고 그토록 복잡한 역사를 지니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 한번은 하면서 미루다가 이번에 염가로 이 책이 나왔기에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사실 나 말고도 우리들 상당수가 그러지 않을까 한데 생각보다 우리는 국제 뉴스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관심이 있어도 영미권 뉴스에 집중되어 잇는 듯. 그래서 왜 코소보 전쟁이 일어났으며 보스니아에서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코소보 때문에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뻔 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나도 사실 그랬다. 그래도 이 곳에서 무수히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것, 또 그 가운데는 인종 청소에 가까운 학살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발칸 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이기에 어떤 역사적 사실을 연대기 순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현재의 복잡한 발칸 상황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를 중점으로 서술한다. 그 결과 기독교, 정교, 이슬람교의 종교적 충돌, 슬라브, 투르크, 알바니아, 세르비아 등 다양한 민족들의 이해관계가 가능한 경우의 수만큼 얽혀 오늘에 이르렀음을 밝힌다. 어쩌면 이런 서술 과정에서 저자가 일목요연한 정리를 하지 못하고 다소 장황하고 두서없이 설명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의 잘못이라기 보다 그만큼 발칸 반도의 역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복잡한 발칸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있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현재 많은 세계인들이 갖고 있는 발칸 반도와 그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사실은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그에 의하면 수많은 학살과 피의 전쟁으로 이루어진 발칸의 이미지는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서방국가에서도 일어난 것을 배타적인 시각으로 본 결과이다. 그리고 발칸의 여러 민족들이 전쟁을 좋아하고 살인마적 기질을 지닌 것도 아니다. 실질적인 전쟁과 학살은 인간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서유럽이나 미국의 개입, 그네들의 영향이 그런 상황으로 이끈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고 책임을 발칸 외의 영향력 강한 국가들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다.

한편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발칸의 복잡한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은 투르크족이 발칸 반도에 들어와 수세기를 통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보통은 침략자가 통치를 하면 언젠가 쇄락해 물러나거나 현지의 종교 문화에 동화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종교적 문화적 어긋남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는 결코 종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생각 외로 기독교, 유대교 등이 이슬람교와 평화로이 공존했으며 교인들의 왕래 또한 자유로웠다. 그래서 만약 오스만 투르크가 타 종교를 압박하고 이슬람 중심으로 종교를 이끌었다면 오늘의 복잡한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아 종교적 차이가 민족적 차이로 전이되어 더 복잡해 진 것은 아닐지.

현재 발칸 반도는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단일 민족 국가의 이상은 많이 약해지고 다시 다문화 사회를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 정치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았다. 수천 년간 단일민족의 틀을 유지한 것은 분명 발칸의 여러 국가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이리라. 그러나 우리도 현재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신화가 배타와 차별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경제적인 문제와 맞물리고 있다. 제대로 잘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도 후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그전에 이미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 정치적으로 일어나는 것부터 해결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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