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로 구입했던 첫 책을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매우 비슷한 시기-중학교 2학년-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장 자끄 루소의 <에밀>, 그리고 <아이아코카 자서전>을 구입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 가운데 니체는 당시 미숙한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어떤 매력이 있었음은 막연히 느껴 이후 그의 저작을 관심 있게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쓴 박홍규 선생도 중학교 시절부터 니체를 읽기 시작해 30년 이상 니체를 여러 차례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니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 나아가 니체주의자라고 하는 한국의 니체 연구학자들에 대한 비판서이다. 그래서 니체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책일 수 있다. 그래도 책을 읽다 보면 니체의 철학 이전에 서양의 인문학을 수용하는 한국 학계에 대한 문제점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니체에 대해 비판하는 요지는 간단하게 책 제목처럼 니체가 민주주의를 반대했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니체의 저작들을 조목조목 집어가며 니체가 계급사회를 지지했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니체는 태생적으로 고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천민이 있으며 이 둘의 관계는 역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민은 자신의 처지를 역전시키려고 생각하려 하지 말고 주어진 노예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를 기반으로 한 선택 받은 계급이 자유로이 초인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택 받은 계급은 그리스-특히 스파르타의 전통을 이어받은 백인 게르만 혈통의 사람이다. (이 부분이 히틀러의 신봉을 이끌어냈다.) 자유로움이란 약탈, 방화 등 보통 우리가 악하다는 부분까지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야수적 자유를 말한다. 노예를 착취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그것이 바로 니체가 생각한 선, 나아가 힘에의 의지였다고 말한다. 이 경우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선은 인간의 자연적인 충동을 억누르는 나쁜 악이게 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실현될 수 없는 천국이나 구원의 논리로 우매한 대중에게 원죄의식을 불어놓고 노예 상태로 이끌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민주주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반민주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에 니체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특히 청소년들이 읽으면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아가 그럼에도 어떻게든 니체의 반민주주의적인 태도를 탈색하려는 니체 학자들의 태도 또한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한 풍토의 원인으로 니체가 일제시대에 들어왔고 유교적 문화 속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니체의 권위주의적, 반민주주의적인 사유가 좋은 것으로 윤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연구 성과를 번역하는 수준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상황에 맞는 수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그렇다고 니체의 모든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비록 니체를 정신병자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니체의 사유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 플라톤, 칸트, 헤겔에 대한 혐오 즉, 이성과 육체의 분리적 사고에서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절대적 도덕에 대한 부정, 모든 환상의 허구성 폭로, 내세가 아닌 현세를 중시하는 태도 등에서는 누구보다 지지의 입장을 표명한다. 하지만 그 반민주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한국에서 니체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서양은 서양대로 자신들의 상황에 맞추어 니체를 해석했지만.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거칠고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저자의 비판은 그게 사실이라면 분명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니체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대중 사회가 도래하려 하고-현재와 비교하며 아주 조급적인 것이었겠지만-그 안에서 인간들의 다툼, 지키지도 못하는 선에 대한 관념을 위에 두고 행해지는 전쟁이 일어나는 격변의 시기에 대해 니체는 어떤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이 신경증의 일부분이었든 말이다. 특히 그의 사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유미주의적인 면이 많은데 그처럼 니체는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예술적) 고귀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반동적인 생각을 품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규약, 도덕을 거부하고 환상을 심어주는 종교와 학문을 비난하고 나아가 몇 선택 받은 선인, 초인이 지배하는 세계-어찌 보면 이것은 그가 비판한 플라톤의 철인에 가깝다-를 꿈꾸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니체가 노예를 인정한 것은 자신을 노예 계급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와 동시에 혼란, 흔히 말하는 선악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고귀한 예술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야 하는데 실제는 그럴 수 없으므로 그 현실의 기반이 되는 노예를 상정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느 정도 니체의 사유를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 니체는 지금처럼 추앙 받을 정도는 아닌 존재가 된다. 어쨌든 반민주주의적인 것은 분명하니까. 그러므로 이 책의 진정한 비판 대상은 니체 본인이 아니라 그를 숭상하는-그것도 니체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숭상하는 한국 학자들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부분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니체를 좋게만 바라보려는 학자들 말이다. 모르겠다. 이러한 태도가 우리의 선악, 좋고 나쁨과는 다른 니체적 기준을 따르는 것일지도.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태도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야비한 부르주아적 본능의 무질서’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는 저자의 생각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니체의 철학에 어느 정도 기원을 둔 현대의 다양한 철학들을 싸잡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전에 니체의 저작들을 읽으며 저자의 말이 정말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울러 니체 학자들의 반론, 나아가 현대 다른 철학 연구자들의 견해도 나와야 한다고 본다.
PS: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니체의 철학을 아예 모르거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어느 책보다 이 책이 니체 철학의 핵심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