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의 방: 신조형주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예술 – 피트 몬드리안 (전혜숙 역, 열화당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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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것은 화가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그에게만 보이거나 누구에게나 보여야 하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거부하고 그 뒤에 감추어진 사물의 본질을 그리려 했다.

사물의 본질을 그리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외양과 달리 플라톤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나는 그를 플라톤주의자로 보아왔다. 그것은 이 책이 보수적인 견해를 지닌 X, 문외한 Y, 몬드리안이 투영된 신조형주의자 Z의 대화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를 플라톤주의자로 보기엔 어딘지 미흡한 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까지 나는 그가 사물의 본질을 복잡한 외양을 단순화시키면서 다양한 사각형으로 환원했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몬드리안은 자연의 외양에 감추어진 본질을 사각형이 아니라 수평선과 수직선의 직각교차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관계에 있다고 밝힌다. 즉, 실체가 아닌 관계가 사물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그는 들뢰지안 같기도 하다. 그러나 순간적인 사건이 아니라 불변의 관계-우연보다는 평화적인 고착이 있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꼭 그리 볼 수도 없다.

사실 몬드리안은 신지학(神知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는 플라톤주의에 가까우면서도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이 책에서 그는 그가 생각하는 관계에 의거한 새로운 조형주의를 내세운다. 그 신조형주의는 추상과 실재가 조화를 이루오, 안과 밖, 내면과 외면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조화가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는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원성이 보장된 조화를 말한다. 그런 조화가 이루어진 모습이 저 수평,수직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그 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그의 생각이 회화를 넘어 건축으로 확장되고 건축이야말로 신조형주의가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문학, 음악 등 예술 전반을 파고들며 자신의 신조형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을 하나의 도덕, 정신원리로 발전시킨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향한 원리 말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그의 이론을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 전 칸딘스키의 <점,선,면>을 읽을 때 화가가 지닌 생각의 깊이에 놀랐었다. 그런데 이번 몬드리안의 책도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이 회화론과 일치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나 동어반복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의 주장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지러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생각에 흠집이 났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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