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송병선 역, 민음사 2007)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남미는 환상문학이 발달되어 있다. 그 환상문학은 단순한 공상적인 것부터 현실적인 환상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학도 상당히 건조하고 현실적인 맛이 나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상문학에 속한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도 마찬가지다. 호르헤스와 문학적 지기였던 그는 호르헤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지만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 중 <모렐의 발명>은 1941년 27세의 나이에 쓴 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변역 되었고 아르헨티나 문학상까지 수상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환상성은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공상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형을 언도 받은 도망자가 한 섬에 들어가 모렐이라는 과학자가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 즉 홀로그램을 넘어 냄새와 맛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낸 가상 현실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은 그 환상의 세계에 자신을 편입시키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매트릭스의 세계, 사이버 현실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첨단 과학 영화처럼 어려운 단어와 기괴한 분위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문체와 직선적인 진행으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르헤스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언어로 이야기를 꾸며가는 것이 아니라 서사 자체에 충실한 진행을 보인다. 한편 곳곳에서 카사레스는 주인공의 일기에 비판적 주석을 달고 있는데 이것은 호르헤스가 근거 없는 각주로 이야기의 사실성을 환상적으로 부각시켰던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한편 이 소설의 내용은 인간 삶의 유한성과 기록의 무한성, 상상과 실재 그리고 사랑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유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일 뿐 카사레스는 이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 환성적 공간과 그 이야기를 어떻게 사실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한 듯하다. 그래서 이야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이야기는 다소 싱겁게 보이고 그 뒤의 사유거리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아!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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